앞편에서 언급한 사내 인간관계 스트레스와 직무 만족도 하락, 끊임없는 연가 사용 문제 외에도, 업무 스케줄로 인한 불안정성과 피로가 이 결심에 한 몫했다.
나는 일 욕심이 상당한 편이다. 신규 프로젝트가 생기면 주도권을 잡고자 노력하고 다른 개인 일정들을 미뤄서라도 그 일을 맡으려 한다. 난임 환자에게 규칙적인 생체리듬과 편안한 마음 상태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이미 한껏 받고 있는 일터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보이면 잡고 싶어 아등바등하다 보니, 이래서야 임신이 되겠나 싶었다.
배란이 쉽지 않던 나는 난임 병원을 다니면서 페마라 정을 복용했다. 호르몬제 없이는 생리주기가 50일~90일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다행히 페마라를 복용하면서 정상에 가까운 생리주기를 되찾았다. 난소도 약효를 잘 받아서 한 주기에 3~4개씩 자라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주기에 난자가 여러 개 자라도 그중 어느 하나가 임신으로 이어진 적이 없다. 각설하고, 자연임신 시도를 하던 중 열심히 여러 개의 난자를 키워 배란만 시킨 적이 몇 번 있다.
한 주기에는, 약을 복용하던 도중 갑자기 2주간 해외출장 발령이 났다. 4일 만에 정해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출장이었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해당 일을 맡게 돼 내심 기쁘고 설레긴 했으나, 하필 출장 기간 중에 배란일이 겹쳤다. 대체 인력이 많이 없는 사무실에서 출장 거절은 쉽지 않다. 그리고 "남편과 부부관계를 해야 해서 출장을 못 갑니다"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먹힐 일이다. 게다가 마음 한편에는 코로나 시국에 국가가 확보해주는 해외출장이 무척 탐나기도 했다. 결국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돌아왔다. 그 달에 나는 5개의 난자가 배란되었다는데, 어떤 시도도 없이 내 몸을 떠나갔다.
한 주기는 내가 맡은 사업이 가장 바쁜 기간과 겹쳤다. 일주일 간 개최될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첫날은 생방송이, 둘째 날은 온라인 행사 직접 진행, 며칠 뒤에는 외국인들을 인솔해 현장학습을 떠나는 일정이 포함돼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3주 정도의 시간 내내 피로가 누적됐다. 대망의 배란 주에는 생방송 현장 리허설이 밤 12에 끝났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 생방송을 마친 후엔 몸에서 긴장이 살짝 풀렸는지만 일주일간 열감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임신의 가능성 때문에 감히 약은 손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어느 때 걸렸던 감기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서럽게도 행사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코로나 걸린 게 아니라서 회사는 계속 나가야 했다.
물론 행사 일정이 끝나고 나서 나와 사수는 상사로부터 수고했다는 피드백을 단 한 번도 받질 못했다. 그 대신 "이제 행사 끝났으니 다른 일도 맡을 수 있겠네" 라며 '덤'을 얹어주겠다는 통보만 받았다. 무서웠다. 내 몸이 망가질까 봐, 난임이 아니라 이 상태로는 불임이 될까 봐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어떤 일을 무사히 마친 후 안도감과 행복, 뿌듯함을 느끼면 제일 이상적이련만, 내게는 어떤 일을 마쳤다는 것이 낭떠러지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분노와 슬픔이 나중엔 무기력으로 바뀌고 불면증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다만 일 욕심 많은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정을 못 받으면서도 3개월 뒤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다가올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우울한 와중에 욕심과 설렘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타는 줄 알면서도 계속 불빛에 다가가는 불나방이 이런 모습이리라. 아마 이대로 회사를 다니면 또다시 난임 병원에 쏟는 비용과 시간은 그대로 흘려보내면서 임신은 뒷전이 될 것 같았다. 직장과 난임치료를 병행하며 들었던 그동안의 고민들이 모이자 "내 몸과 가정을 우선시할 때다"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들었다.
난임을 사유로 질병휴직을 낼 수 있는 것도 공기관에 다니고 있어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염치 불고하고 살겠답시고 법규들을 살폈고 원하던 답을 찾았다. 공무원은 질병휴직으로 1년간은 월급의 70%를 받는다 한다. 하지만 공무직은 다르다. 1년간 무급이다. 그래도 직장 자리를 지킨 채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휴직은 빠르게 처리되었다. 물론 상사들의 쓴소리가 없진 않았다. 내 결정에 못마땅해하며 콧웃음을 쳤다는 동료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뒤로 물러났을 테지만, 내 몸을 1순위로 생각하자고 마음먹었기에 쓴소리도 달게 넘겼다. 그렇게 나는 휴직 기를 갖게 됐고 몸과 맘을 재충전하며 난임치료에만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