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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Jul 07. 2024

자식의 몫을 부모가 다 감당해주려 하지 마세요.

저녁마다 연락하는 학부모님께 보낸 문자

 작년 여름, 광화문 앞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모였던 선생님들의 아픔이 뉴스로 보도된 이후 학교 현장에서는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던 학부모들 연락 횟수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안도의 이야기가 잠시 흘러나왔다. 하지만 큰 일에 반짝 열광했다가 그 열기가 사그라들면 바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관성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자 다시 아무 때나 연락해서 자신의 편의를 충족시키려는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학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반 학부모님들께 드리는 글을 써서 아이들이 준비해야 할 준비물과 지켜야 할 규칙을 안내하고, 학부모님들께서는 교사의 근무시간에만 연락을 해주십사 하는 말을 굵은 글씨로 표기하여 정중히 부탁드렸다. 다행히 대다수의 학부모님께서는 그 당연한 부탁을 지켜주셨지만, 그러지 않는 분들도 어김없이 있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문자를 주시는 우리 반 학부모님은 늘 정중한 어투로 문자를 시작했다. '선생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무슨 급한 일이 있으셔서 그런가 하고 내용을 살펴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다. 아이가 점심시간에 양치를 잘 안 하는데 부모의 말은 잘 먹히지 않으니 선생님이 얘기해 달라던가 하는, 저녁에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교사에게 부탁할 내용이 아닌, 자녀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문자에 바로 답을 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받아주면 계속 저녁에 문자를 하시겠지? 하는 우려에 답장을 하지 않고 다음 날 근무시간이 시작되는 8시 40분에 맞춰 답장을 했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는 근무시간에 맞춰서 연락하시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하지만 나의 기대는 오롯이 교사인 나만의 기대였던 것일 뿐, 학부모에게는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일까. 그 이후에도 그 학부모님은 저녁에 문자를 하셨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그리고 오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주말 저녁 나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을 살짝 각색해서 써보면 아래와 같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아이가 목요일 조퇴하느라 학교에서 읽어야 할 책을 못 챙겨 왔어요.
그래서 독서록 숙제를 월요일까지 못할 것 같아서요.
내일 학교에 가서 책 읽은 다음에 화요일까지 제출해도 되지요?
아이가 너무 걱정하고 있어서 문자 합니다.
쉬는 날 문자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문자를 보고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내내 감싸주는 부모의 품에서 조그만 스트레스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얼마나 약한 어른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같으면 답장하지 않고 내일 아침 출근 시간에 답장을 했겠지만, 나는 한 시간 정도 생각한 끝에 답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몫을 대신 감당해 주려는 이 학부모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의 감정 해소를 위해 교사의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는 주말 저녁 문자에 대해서도 꼭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학부모님 안녕하세요.
제가 원래 주말에는 답장을 안 드리는데 학부모님께 꼭 필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 답장을 드립니다.

독서록 숙제는 제가 월요일부터 공지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챙겨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목요일에 조퇴했지만 그전부터 공지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몫은 그저 짧은 꾸지람과 내일까지 해오라는 조언 정도겠지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 학부모님께서는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을 대신 감당해주시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학부모님께서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몇 번 저녁에 연락을 주셨는데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러지 말아 주십사 정중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는 근무시간에 연락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


 다행히 학부모님께서는 문자를 읽으시곤 죄송하다고, 다음부터는 꼭 근무시간에 연락드리겠다는 답장을 주셨고 나는 감사하다고 답했다.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자식의 짐을 대신 지어 주고 싶고, 자식의 아픔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때로는 자식의 성장을 위해서 부모는 한 걸음 물러나 자식이 자신의 잘못이나 과오를 뉘우치고 스스로 일어나 다시 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조용히 지켜봐 주어야 한다.



 주말 저녁 내가 보낸 문자가 우리 반 학부모님으로 하여금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생각하는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가 되었기를 나는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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