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출발하는 제트(JETT)라는 요르단 버스를 타고 고대도시 페트라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가방 2개를 예약한 호텔로 옮겨놓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은 깨끗하게 보였으며 직원들은 어제보다 친절해 보였다.
이스라엘, 요르단 등 삭막한 이 땅에 모세와 예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토착민들이 잘 사는 것 같다.
중동의 아랍사람들을 테러분자 또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우리에게 비쳐 있다.
중동에는 무서우니 가지 말라는 지인들도 있었다.
막상 생활해 보니 그런 이미지는 느낄 수가 없었다.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고 정복한 사람들을 향한 보복감정으로 인해 강한 이미지가 우리에게 보인 게 아닐까?
우리가 어릴 적에 봤던 인디언 영화의 기억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만사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게 되면 당한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 우리에게는 독립투사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미국에 의하여 해방이 되다 보니 지금까지도 우리의 주권이 그네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페트라로 가 볼까요?
페트라는 기원전 1세기부터 유향과 몰약 등 각종 향신료 무역을 통해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나바티 안 왕국의 수도로서 번창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페트라는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가 AD 363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무역통로가 변경되면서 도시는 황폐화된다.
AD 7세기 중반 페트라는 완전히 폐허가 되고 일부 베두인족이라는 유목민들만 거주하는 잊힌 도시가 되었다.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네스 버크 할트마 페트라를 재발견함으로써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알려지게 된 근대의 요인은 헤리슨포드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의하여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우리도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페트라의 신비롭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보기 위하여 약 4시간여에 걸쳐 버스를 타고 페트라에 왔다.
한국에서 요르단패스를 샀기 때문에 입장을 쉽게 했다.
고대 도시의 신비로움이 곳곳에 서려있다.
그중에서도 인디아나 존스 영화에서 봤던 어렴풋한 기억 속 '알 카즈나'
기원전 1세기에 통바위에 새겨진 신전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깎아서 만든 그 당시의 솜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구도 연장도 변변치 않은 그 옛날에 저런 대작을 만들어 내다니...
한참을 바라보다 험난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바라봄은 더 멋있었다.
사진작가인 듯한 사람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찍느라 바쁘다.
아래로 보니 아찔하니 위험천만이다.
내려갈 때는 외길에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눈치껏 기다렸고 손을 잡아주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신전 앞은 페트라의 요지다.
낙타와 말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진풍경을 연출한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도 사람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이 신전의 용도가 밝혀졌는데 왕의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하에서 시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크(좁은 협곡), 원형극장, 대사원, 일주거리 등을 보면서 내려왔다.
마차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먼지를 뒤집어쓰기도 하고 피해 다니며 천천히 걸었다.
페트라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물을 찾으니 없다.
직원에게 물으니 사무실의 페트병물과 컵을 가져와서 부어준다.
사막의 오아시스.. 고마운 분이다.
여기서도 감사합니다 로 인사하며 한국말을 알린다.
호텔에 돌아오니 호텔 매니저가 모레 이집트 가는 교통편이 밤 10시 배에서 아침 9시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내일 와디럼을 가려고 버스표까지 사두었는데 이게 웬일??
모레 밤 10시 배를 타면 하루의 시간이 생기니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블로그 정리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계획을 바뀌어야겠다.
내일 기온이 41도 올라간다고 하니 와디럼 사막관광은 포기하자.
푹푹 찌는 더위에 종일 노출되었는데 연이틀이면 무리일 것 같다.
호텔에서 오랜만에 쉬면서 호캉스나 해볼까 한다.
매니저에게 내일 와디럼 버스표 취소를 부탁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마감했다.
버스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