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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몽 Dec 18. 2021

사랑 애(愛)는 도대체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나?

한자의 자원

한자와 우리말


'수수'라는 단어가 있다. '사탕수수', '수수하다' 표현에도 쓰이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금품수수'할 때의 수수(授受)이다. 외래어 도입과 순우리말 사용 시도로 요즘 우리말에서 한자어 비율이 낮아졌다고 해도 결국은 70% 이상의 비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살펴볼 수 밖에 없다.


'주다', '받다'를 표현하는 한자에는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수수(授受)는 '주다 수(授)'와 '받다 수(受)'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 한자를 조금만 살펴보면 '받다 수(受)'가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다 수(授)'의 경우에는 소위 '재방변(扌)'이라고 불리는 한자가 들어가 있다. 한자는 80% 이상이 한자와 한자의 조합, 곧 일종의 데이터베이스 모음이라 처음에는 정신이 없어도 구성 요소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재방변(扌)'은 '손 수(手)'가 다른 글자로 변할 때 모양이 변하는 형태다. 한자의 핵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수라고 부르는데, '변'이라는 것은 왼쪽에 있는 부수를 부르는 명칭이다. '받다(受)'에 없던 손이 '주다(授)'에 추가된 이유는 뭔가?



물건을 받는 것은 꼭 내 손이 필요하지 않다. "거기 두고 가"라고 말해도 상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건을 줄 때는 반드시 손이 있어야만 한다. 프로포즈를 할 때 반지를 걷어차면서 주거나 하면 도대체 누가 프로포즈를 하겠는가? 곧 사람과 사람이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반드시 손으로 줘야 예의라는 것이다. 원래 受 하나로 주고받는 두 가지를 모두 표현했다가 후에 의미를 분리시켰을 때, 어떻게 분리시켜야 표현하려는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지 고민한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손으로 표현한 '주고받다'


한편으로 도대체 왜 受는 '주고받다'를 표현했던 말이었는지 탐구해보자. 한자는 계속해서 말하지만 데이터베이스의 조합이다. 손을 모아 아래를 향하게 만들면 다음같은 형태가 된다. '무언가를 쥐는 듯한 손 모양'을 표현한 한자가 바로 '손톱 조(爫)'이다.


'손톱 조'라고 부르지만 다른 글자랑 합쳐질 때는 그냥 '손'을 의미한다.


한편으로 '자주 사용하는 오른손'의 모습을 표현한 한자가 '또 우(又)'이다. 자주 사용하는 손이기 때문에 '또'라는 뜻이 생겼지만, 보통 다른 글자와 합쳐질 때는 손의 의미이다.



처음엔 '주고받다'라는 뜻을 모두 가졌던 受는 복잡하게 생겼지만, 한자를 뜯어보면 곧 물건(冖)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에서 손이 오가며 물건을 주고받는 모습을 그린 단순한 글자이다.


사실 고문자 금문 형태를 볼 때 가운데의 한자는 원래 '배'를 의미하는 글자인데 다듬어져서 冖이 된 걸로 보인다. 아마도 원래 배에서 거래하던 모습을 나타낸 글자인 걸로 보인다.



사랑을 의미하는 한자는 어떻게 만들었나?


그런데 이 受와 또 비슷하게 생긴 것이 이다. 바로 그 유명한 '사랑 애'이다.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글자는 많이 안다. 얼핏 보면 심장의 모습을 본뜬 '마음 심(心)'만 새로 추가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밑의 부분이 다르다.



손을 의미하던 又가 아니라 夊로 바뀌었다. '천천히 걸을 쇠'라고 해서 발을 질질 끌며 천천히 걷는 걸음 모양새를 형상화한 한자이다. '손톱 조(爫)'는 아까 말했다시피 손이다. 은 정확히 의미를 따지면 '덮어 감싸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덮을 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글자들이 만나 도대체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게 된 걸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 기쁨, 슬픔, 행복, 고통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내 심장이다. 때문에 중심에는 '마음 심(心)'을 둔다. 이 마음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걸 손(爫, 冖)의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한편으로 사랑이란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감정이 아니다. 내가 줄 수는 있어도 상대에게 받는 것은 당연시 되지 않는다. 때문에 '손(又)'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걸음(夊)'으로 바뀌어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가는 마음을 표현한다.


소중하게 마음을 감싼다.


'마음을 소중히 여겨 천천히 상대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대가를 기약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표현한, 이런 고대인들의 통찰을 발견할 때가 정말 흥미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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