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있는 이야기로 쉽게 살펴보는 한자
취업하고 난 뒤 큰마음 먹고 40만 원 가까이 되는 예쁜 지갑을 샀었다. 그때만 해도 직장인은 명품을 들어주는 게 매너인 줄 알았다. 업무로 제주도를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샀는데, 사실 알고 보니 백화점 가격이 더 쌌었다. 면세점이라고 무조건 싼 게 아니라는 걸 그때 배웠다. 지갑은 아주 독특해서 3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정말 취향인데, 들고 다닌 건 반년도 되지 않았다. 지갑이 귀해서 모셔둔 게 아니라 핸드폰을 바꾸었더니 이제는 핸드폰으로 모든 결제가 다 되었기 때문에 굳이 무겁게 지갑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 **페이가 얼마나 편한지 그걸 몰랐네! 반년만 일찍 핸드폰을 바꾸었다면 40만 원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을.
이렇게 우리가 현찰도 아닌 신용카드조차도 잘 들고 다니지 않아도 오늘날 금융 거래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실 그것 아는가? 사실 신용카드는 물체를 객관적으로 보면 플라스틱 쪼가리이고, 지폐는 종이 쪼가리이며, 동전은 구리 쪼가리이다. 얼마를 가지고 있어도 이 쪼가리들로 우리는 바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는 없다. 무슨 소리야? 마트 가서 돈 주고 사 먹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한다면 잘 생각해봐라. 그건 우리의 쪼가리들에 가치가 있다고 상점 주인이 믿어 실제 물건으로 바꿔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받은 쪼가리를 정부가, 은행, 신용카드 업체 등이 합당하게 값어치를 쳐줄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 받아주는 것뿐이다. 신용카드도 우리가 제대로 돈을 갚을 능력이 된다는 신용을 높이 사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돈이 최고라고 우리는 외치지만, 사실 사회 제도가 그 뒤를 받쳐주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쪼가리일 뿐인 게 돈이다.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를 가져와 본다. 유발 하라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돈에 관해 설명했다. “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좀비 같은 것으로 세계가 멸망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영화 같은 것을 생각해봐라. 더는 은행과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보장해준다고 믿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무리 잘나가던 재벌 2세가 백지 수표를 흔들어봐도 물 한 병 사지 못한다. 그런 세계에서는 물과 식량이라는 실물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린다.
그런데 오늘날 화폐는 정부와의 공조하에 은행에서 찍어내지만, 고대에는 어땠을까? 고대는 일반적으로 물건과 물건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물물교환을 했다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최초의 중국 왕조로 인정받는 상나라에서는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했다. 조개껍데기는 바닷가에는 흔한 것이지만 내륙지방 사람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소위 말하는 레어템이었다. 잘 망가지지도 않았을뿐더러 생김새도 예뻤다. 여러 가지 물건을 화폐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굳이 조개껍데기가 선정된 것은 이런 간편한 휴대성과 견고함 등이 상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상나라의 상(商)은 물건을 팔 때의 상인(商人), 물건을 파는 가게의 상점(商店)의 상과 같다. 기원전 17세기부터 11세기까지 존재했던 나라로 추정되는데, 상나라를 세운 상족은 건국 이전부터 5번은 주거지를 옮겼고 건국 후로는 8번을 수도를 바꾸었다. 이동이 워낙 잦다 보니 각 지역의 특산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쉬웠으리라. 그 때문에 당시에 존재하고 있던 200개 이상의 부족에 비해 장사에 특화된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인이라는 말은 원래 ‘상나라의 사람’에서 ‘장사하는 사람’으로 뜻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상나라에서 단순히 1대 1 물물 거래를 하지 않고 조개를 화폐로 대신하는 이른바 중개무역을 한 것은 당시 지리적 환경 때문이었다. 지역 간의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소고기 같은 물건을 직접 교환하면 이동 과정에서 상품의 질이 상해서 화폐가 부득이하게 필요해진 것이다. 이동의 편이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동전으로 사용된 조개 화폐를 패폐(貝幣)라고 부른다. 상나라 중기 즈음부터 사용되었는데 후에는 공급이 부족해서인지 조개의 모습을 돌멩이로 만든 석패(石貝), 청동으로 만든 동패(銅貝), 뼈로 만든 골패(骨貝) 등이 있었다. 조개는 이빨 껍질 모양이 있는 것을 주로 사용했는데, 뒷면은 갈아 평평하게 만든 뒤 실로 꿰기 쉽게 구멍을 내었기 때문에 휴대에 편리했다.
조개를 나타내는 한자는 이 조개의 모습을 본뜬 ‘조개 패(貝)’이다. 사물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서 한자를 만드는 상형의 원리로 만들어졌다.
한자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글자가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낸다. 글자가 바로 의미를 가지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의 특성상 일일이 필요한 의미마다 글자를 새로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만드는 거야 만든다지만 그걸 또 어떻게 외우나. 그래서 보통 글자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뜻을 확장시켜 새로운 뜻을 추가하는 식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조개’는 고대 시대에 돈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貝가 들어가는 한자들은 일반적으로 ‘돈’이나 ‘재물’과 관련된 뜻을 가진다. 몇몇 가지만 간단히 살펴보자.
패배하다 패(敗) : 전쟁에서 패배하면 돈이나 재물로 보상해야 하기 때문에.
무역하다 무(貿) : 무역은 재물을 돈으로 주고받는 행위이다.
사다 매(買) : 물건을 사는 것은 돈을 주고 사야 하니까. 반대의 뜻으로 ‘파다 매(賣)’가 있는데 파는 행위도 돈과 관련되기 때문에 여기도 貝가 들어간다.
값 가(價) : 장사할 때 돈으로 값어치를 매기기 때문이다.
기원전 400년 즈음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철기 농기구가 배포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높아져 경제가 왕성해졌다. 이때부터 금속화폐가 본격적으로 주조되어, 이후 천자국의 지위가 낮아진 전국시대에는 제후국이 독자적으로 발행할 정도가 되었다. 따라서 조개껍데기 화폐는 사용하지 않은지 이미 역사적으로 오래되었지만, 친구에게 조개껍데기 뭉치를 주며 고대였다면 네가 갑부일 거라고 한 번쯤 놀려보는 건 어떨까?
참고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사피엔스>, 김영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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