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스리는 글들
어둠 속 세찬 물살을 거스르는 배에서 한 남자가 마부도 말 위에 타 있었다. 우뚝 배에서 솟구친 듯 보이는 상태에서 그는 붙들고 있던 말고삐를 놓아버렸다. 안장 위에 두 다리를 접어 올리고는 발까지 모았다. 배에 물살이 부딪쳐 몸이 아찔아찔하게 흔들흔들 거리며 금방이라도 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떨어지면 그대로 강물로 이 밤에는 구출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자세를 유지하다 말했다.
“나는 이제 도를 알겠도다.”
1780년 정조 4년, 청나라 황제의 탄신일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조선 사신단은 마음이 급했다. 목적지인 청나라 수도인 북경에 이르렀으나 건륭제가 만리장성을 넘어 열하 지역의 피서 산장으로 떠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건륭제가 특정한 날짜까지 열하로 오라고 명령했는데 하필 이때 또 폭우가 내려 강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낮에 보니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바라보며 배를 타고 있었다. 종교의식인가 어리둥절하던 사신단은 곧 사람들이 물살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어지러워 하늘을 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살이 얼마나 세차고 소용돌이치던지 보고있으면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사신단은 곧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나 물살이 거친데도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속삭였다.
“요동 평야는 평평하고 광활해 물줄기가 이렇게 세차도 조용하구려.”
이윽고 캄캄한 밤이 되었다. 촉박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사신단은 쉬지 못하고 배를 탔다. 한밤중에 황하 물줄기를 아홉 번이나 건너야만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낮과 똑같은 황하였거늘 갑자기 물살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다. 어찌나 사납고 거센지 소리만 들으면 만리장성조차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여울물이 울부짖는 소리는 만 대의 전차가 움직이고 만 마리의 기병이 내달리며 또한 만 대의 대포를 쏘고 만 개의 북을 쳐도 압도할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는 상상력도 극대화되었다. 멀리 보이는 바위와 강가 버드나무 가지가 사람 정신을 현혹시켜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타나 놀라게 하고, 이무기와 교룡이 양옆에서 슉 채갈 것 같았다. 불안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누군가가 이치를 아는 척 말했다.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원혼들 때문에 이렇게 황하가 울부짖는 걸세.”
사신단에 속한 사촌형을 따라간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은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닐세. 내 마음이 물소리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네.”
박지원의 조선 집은 산에 있었다. 여름마다 큰비가 내려 시냇물이 불어나면 항상 물살이 사나워져 항상 수레와 말이 내달리는 것 같고, 대포와 북소리가 들려 귀가 아플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물살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마음이 맑은 날에는 그 소리가 퉁소 소리처럼 들렸고, 슬픈 날에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렸으며, 운치가 있을 때에는 꼭 찻물이 끓고 있는 것만 같았으며, 화가 날 때는 언덕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물은 알아서 흘러가며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의 소리를 낼 뿐인데 자신의 마음 상태 때문에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먼 중국 땅에서 밤중에 황하를 건너다가 이 경험을 떠올렸다.
낮에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밤에는 이렇게나 거칠고 선명하다. 중국 땅은 워낙 큰 땅이니 조선과 낮밤의 이치가 달라 강물이 낮에는 소리가 없다가 밤에만 울부짖는 걸까? 아니다, 물은 거칠게 흐르면 그만큼 매서운 소리를 내는 게 자연의 당연한 이치였다. 다만 박지원이 조선 땅 집에서 그의 마음에 따라 시냇물 소리가 다르게 들렸듯, 이 밤 물을 건너는 것도 똑같았을 뿐이다. 낮에는 시야가 선명해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거친 물살에만 집중하느라 청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밤에는 캄캄해 보이는 게 없으니 귀가 예민해져 들리는 소리에 가슴이 덜덜 떨린다.
이날 밤 박지원의 마부는 하필 말에게 발을 밟혀 요양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배 가장자리에서 단단히 말을 붙잡아주는 마부도 없는데 박지원은 아예 말고삐를 놓고 안장 위에 다리를 모으고 앉는 기행을 저지른다. 그는 생각했다. 낮에는 눈에 속았고 밤에는 귀에 속았다. 자세히 보고 자세히 듣는 게 오히려 병을 만드니 마음을 비워보자.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마음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집 앞 시냇물을 통해 경험했었다.
여차하면 그냥 한 번 떨어져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박지원은 마음을 텅 비워보았다. 강물을 땅으로, 옷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삼아 하나가 되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무엇을 보아도 현혹되지 않았고, 귓가에는 강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도록 물을 건넜으나 언제 그렇게 두려워했냐는 듯 아무런 걱정도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죽고 사는 판가름을 마음에서 분명히하자 보고 듣는 위험은 사소한 것일 뿐이었다. 전설 속의 우 임금이 강을 건널 때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던 일화를 떠올리며 박지원은 중얼거렸다.
“나는 이제 도를 알겠도다.”
박지원은 열하에서 돌아온 뒤 그간 자신이 청나라에서 경험하고 느낀 기록을 발표했는데 이 기행문의 제목을 『열하일기』라고 한다. 이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 한자로 쓰면 어렵게 보이지만 ‘하룻밤에 물을 9번 건넌 기록’이라는 뜻이다.
「일야구도하기」는 한밤중에 들리는 물살 소리가 얼마나 사나운지를 말한 뒤 고향 집에서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들린 시냇물 소리라는 경험을 언급한다. 그리고 낮에는 들리지 않았던 물소리와 밤에는 들리는 이유가 모두 보고 듣는 것에 지나치게 얽매인 게 이유라고 주장하며 이를 자신이 직접 말고삐를 놓고 말 위에서 위험한 짓을 하며 증험한 이야기를 기술한다. 「일야구도하기」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무리된다.
“보고 듣는 것은 바깥의 자극이다. 바깥의 자극은 항상 눈과 귀에 빌미가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들은 것을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게 이와 같다. 하물며 사람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험하고 위태로움은 황하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그러니 보고 듣는 것이 번번이 병이 되는 것은 오죽하겠느냐? 나는 또한 내 산속 집으로 돌아가 다시 집 앞 시냇물 소리를 들어보며 이 깨달음을 확인해 보고, 몸놀림이 뛰어나 자기가 총명하다고 자신하는 자들에게 경계하겠다.”
눈으로 보고 듣는 것에 우리는 항상 죽을 듯 불안해했다가 금방 다른 것으로 마음이 쏠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자극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보면 우리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상황 그 자체보다는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 마음이 공포를 줄 때가 많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일야구도하기」의 보고 듣는 외부의 자극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비워보라는 교훈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참고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