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해를 맞이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비워내기'

"나도 쉼이 필요해"

며칠 전 3년 넘게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상태가 좋지 않아 기기변경을 하였다. 사용하던 애플리케이션들을 다시 설치하고, 새로 셋팅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몇 시간에 걸쳐 스마트폰을 다시 셋팅하고 마지막으로 기존 스마트폰에 있던 연락처들을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넘기는 작업을 하였다. 


기존 스마트폰에는 천여 개의 연락처가 있었는데 중간에 오류가 났는지 새로운 스마트폰에는 절반 정도의 연락처만 넘어왔다. 그러다가 더 큰 일이 터져버렸다. 이런저런 버튼을 누르다가 기존 스마트폰에 있던 연락처가 모두 지워져버린 것이다. 새로운 스마트폰에는 절반 정도의 연락처만 넘겨진 채로 말이다.


지워져버린 연락처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500여개의 연락처를 날려버린 후 망연자실한 채로 남아있는 연락처들을 서서히 훑어봤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남아있는 500여개의 연락처 중 일부는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아니라 011, 018, 019와 같이 과거의 핸드폰 번호였고, 일부는 아예 누구인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들의 번호도 있었다.


결국 생각을 고쳐먹고 오히려 남아있는 500여개의 번호를 찬찬히 훑어보며 꼭 필요한 연락처만 남기고 모두 지워보기로 했다. 그렇게 찬찬히 연락처들을 훑어보며 최근 교류가 없거나 앞으로 연락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연락처들을 지우다보니 결국 100여개의 번호만 남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현재의 나에게 있어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은 100여명 정도였다. 그렇게 900여개의 번호를 지우고 나니 오히려 현재 나의 상태와 관계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2021년을 시작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해야 할 것과 하고자 했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세웠었다. 다이어리 맨 앞장에 ‘목표’와 ‘계획’들을 크게 적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들을 보고 “해아지~”라고 생각만 하다가 1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계획’들을 지우지 않고, “언젠가는 해야지~”, “언젠가는 해야 되는데~”라고 되뇌이기만 했다. 마치 지우지 못한 900여개의 번호처럼 말이다.


새로운 해를 준비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에 지우지 못하고 끌어안고만 있던 ‘목표’와 ‘계획’들을 과감히 비워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지금 내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되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가질 수 있게 된다.


 “나도 쉼이 필요해 / 나도 쉼이 필요해 / 푸른 파도 속에 / 마음껏 헤엄치며 놀고 싶어요 / 나도 쉼이 필요해 / 나도 쉼이 필요해 / 넓은 들판에서 / 마구 뛰놀고 싶어 쉼이 필요해” (오연준 “쉼이 필요해”)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수업, 학원 수업과 숙제 등으로 바쁜 일상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비워냄이 필요하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것들을 이루기 위한 현재의 계획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아니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비워내고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있어 비워냄은 ‘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을 준비하며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쉼’을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더 높이뛰기 위해 잔뜩 웅크리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 2021. 12. 28. 베이비뉴스를 통해 기고한 칼럼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