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기획가 May 27. 2024

내가 여전히 못하는 것들

육아의 이해

지난주, 프랑스 주재원으로 파견을 간 부서 후배가
한국 출장을 왔다.
주재원의 출장이 그러하듯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차 한잔 할 틈 없이 근황 이야기만 잠시 나누고 헤어졌고,
인사를 하면서 후배가 올림픽 기념 배지를 두 개 주었다.
솔직히 아주 예쁜 기념품은 아니었지만,
개수가 충분하지 않아  같은 부서 동료에게 모두 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내 것을 챙겨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가까이 앉은 6명의 동료 중 기념 배지를 받은 사람은
나와 다른 한 명 A, 그렇게 두 명이 전부였다.

또 다른 동료 B가 나와 A가 손에 똑같은 배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게 뭐냐고 물었다.
주재원으로 간 후배가 준 기념품이라고 알려주면서,
B는 못 봤을 테니 자세히 보라고 포장 케이스를 뜯었다.
나의 행동은 그저 한번 구경해 보라는 의미였지만
앞뒤 문맥을 몰랐던 동료 B는
본인이 가져도 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2개의 배지 중 하나를 집더니
"나는 이거 출장가방에 달아야지"하고 가져가버렸다.

나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순간 당황해서 할 말을 잊었다.
두뇌회로가 잠깐 멎은 듯했다.
몇 분 동안 어떻게 돌려달라고 말해야 하나,
그건 원래 내 것이었으니 돌려달라고 말하면
앞으로 B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이미 말할 타이밍은 놓친 것 같고
(뺏겼다 생각하면 속상하니까)
그냥 맘 편히 내가 준 거라고 생각할까 등등
온갖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그렇게 애매한 감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A한테서 메신저가 왔다.
"희영님, 그 배지 저랑 둘만 받은 걸로 아는데요.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하면
B님이 그냥 가져가면 안 될 거 같아요.
제가 대신 이야기해 드릴게요."
라고 하더니 B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건 주재원으로 부임 간 00가 챙겨준 선물이고
수량이 많지 않아 두 사람만 받은 것이라고.
그리고 B는 "아, 그런 거였으면 진작 이야기하지~"
하고 돌려주었다.


이 해프닝을 겪으며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감정 상하지 않게 말 잘하는 A가 부러웠고,
이런 상황에서 마흔이 넘도록 여전히 말하지 못하는
내가 잠깐이지만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도 이런 이야기를 잘 못하는데,
이제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오죽할까 싶었다.

2년 전 단짝처럼 지내던 같은 반 친구와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다.
나도 그 아이 엄마와 이야기도 잘 통해서 잘 지냈고,
두 아이가 노는 모습이 한 발짝 옆에서 보면 너무 예뻤다.
하지만 내 아이는 그 아이와 있는 것이 스트레스였나 보다.
조금 전까지 같이 잘 놀다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딸아이는 폭발을 해버렸다.
"엄마, 나 너무 화났어. 00가 너무 싫어."
두서없이 그 아이가 자신을 괴롭혔고 못살게 굴었다며
다다다다 쏟아내는데 정말 혼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놀이터에서 미끄럼 타려고 줄 섰는데
누가 새치기를 한다던가,
아니면 너무 가깝게 붙어 서서 불편했다던가
등등의 상황에서 당사자 앞에서는 아무 말 말 못 하고  
엄마아빠한테 짜증을 냈다.
그때  "00야, 내가 불편하니까 좀 비켜줄래"라고
말해라고 일러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도움 안 되는 교과서적인 답이었다.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나 역시도 머리로는 회로를 굴려도
입 밖으로 말을 못 꺼내는데 내 딸이라고 그게 가능할까,
참 어려운 일이구나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먼저 방법을 터득한 후에 가르쳐야 더욱 와닿겠지.
이렇게 배지 하나에 나의 한계와 육아를 또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코리아헤럴드와 인터뷰 - 초보서울러의 서울살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