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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기획가 Aug 18. 2024

출장 이야기 8 - 피의 연대기

직장의 이해

아줌마가 되었기 때문에 부끄럼 없이 편히 쓰는 이야기.

10대~50대 초반의 건강한 여성이라면
한 달에 한 번씩 그날을 겪는다.
하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는 몸의 주기도 바꿔버려서
갑자기 터지기도 하고, 한 달에 두 번 하기도,
한 달을 그냥 건너뛸 때도 있다.
이 그날이 신체 활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혼여행이거나 물놀이가 많은 리조트로
여행이 예정된 경우는
피임약을 먹으며 날짜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해외출장은 살짝 애매하다.
굳이 약을 먹어가며 주기를 조정할 것까지는 아닌데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용품이 부족하면 가까운 편의점에서
바로 살 수 있어야 하고
용변을 보지 않아도
화장실을 2~3시간 간격으로 가야 한다.
이게 한국의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해외출장을 가면 큰일이 되어 버린다.

본사 여성 비율이 20프로 정도인 남초 회사에서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 전체 출장자가 두 명이 되든
열댓 명의 되든 여성 출장자는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속되는 릴레이 회의와 1분의 쉴 틈도 없는 일정이라면  화장실 갈 틈도 만들기 힘들 수 있다.
출장 동료와  밥 먹고 회의하고 이동하고
정말 잠자기 직전까지 모든 동선을 함께 하게 된다.
남자들은 요도 관이 길어서 그런 지
물을 안 마셔서 그런 지 몇 시간 동안 화장실을 가지 않고

잘 버티기도 하더라만...
화장실 가는 게 눈치 보여 생리대 하나로 6~7시간씩

버티다 보면? 피가 넘쳐흐르는 상황이 생긴다.

법인이 대도시가 아닌 허허벌판에 단독 빌딩으로 있는 경우 생리대 하나를 사기 위해 혼자 운전을 해서 마트를 찾아갈 수도 없다.

피부 짓무름이나 뾰루지 생기는 것을 염려하는 건 행복한 고민이고 냄새나 옷에 묻어나지 않을까 엄청 신경 쓰인다. 그런 건 남자들이 더 빨리 알아차림.
영화 추격자에서 하정우의 대사 혹시 생리해요?
그걸 현실에서 겪는다면 그건 진짜 평생 가는 공포이자 트라우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회사에 일하는 여자 동료들,
친구들은 해외 출장 중 생리로 인해 곤혹스러운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봤던 것이다.

특히나 생리대를 사러 "잠시 뭐 사러 나갔다 올게요"
했을 때 뭐 좋은 거 사러 가느냐, 꼭 지금 사야 하느냐,
나도 같이 가자 말하는 눈치 없는 남자 동료 한 명쯤은
어느 조직이든 꼭 있다.
40대 이상 유부남이면 와이프를 통해 학습하여
대충 눈치로 아는데 2,30대 남자 중에는 연애 경험도
많이 없고 눈치마저 없는 답답이가 있다.  
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누군가는 데스노트에 기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남자들이여,  
여자 동료가 뭐 사러 간다고 하면 제발
묻거나 따라가지 말기를!
그들은 결코 술이나 담배, 간식이나 기념품
같은 걸 사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나름 치열한 상황이니 모른 척 좀 해다오.
특히 남중 남고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아~
이 누나가 십수 년간 축적한 경험에 입각해서 말해주는 것이니 제에발 기억해 다오.
그래야 너드라는 말 안 듣는단다.

이번 출장도 그날과 날짜가 딱 겹쳤는데 다년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터득했고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었다.
다음 3가지를 잘 챙기면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없을 듯하다.

1. 스마트워치로 생리주기 추적, 예측하기
(아이폰 애플워치는 잘 모름 갤럭시 기준)
이 기능은 정말 쓰면 쓸수록 혁신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유저가 직접 생리주기 입력해서 캘린더를
통해 확인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수면의 질을 체크하기 위해 잠잘 때 워치를 차고 자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피부온도를 측정해서 기록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배란일이며, 가임기, 생리 시작 3일 전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스스로 체온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고
생리할 때는 피부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 이후 사이클에서 바닥을 찍고 다시 올라가는 시점 전후가 배란일이었다. 주식 그래프처럼 사이클이 있고 저점,

고점을 반복한다 해도 그 편차가 고작 1.5도 내외다.
이게 운동하고 땀나서 더운 건지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추운 건지 피부온도가 오르내리는지 구별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다.

민감한 사람은 배란통도 느낀다던데 나같이 둔한 사람은 피를 눈으로 직접 봐야
'아, 이제 시작하는구나' 알기에 미리 예측해서 며칠 전 알려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기능인지 모른다.




물론 분명 예정일이라 했건만 생리 시작일이
하루씩 뒤로 밀리는 약간의 오차는 있다.
하지만 False Alarm도 좋다.
20대 초반 해외 경험이 얼마 없을 때 외국에서 갑자기 맞이한 생리에 피가 넘쳐 바지를 적시고 카시트에도 묻힌 흑역사는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2. 진통제 하루 전에 미리 먹기
출산하면 생리통이 없어진다고 구전처럼 전해 들었는데 그것도 케바케 사바사였다. 난 오히려 출산 전에는 생리통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반드시 진통제를 먹어야 무사히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다.
워치가 며칠 전부터 생리 시작일을 알려줬기에
진통제를 준비했다.
내가 모르는 더 효과 좋은 진통제가 있을까 싶어 병원을 찾아 상담했는데 아스피린, 록소프로펜, 부루펜 계열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타이레놀 말고 대안은 없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꿀팁은 생리 시작함을 인지하면 최대한 빨리 약을 먹을 것, 시작 하루 전날에 먹으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배를 따뜻하게 해주는 온수 파우치가 없어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3. 탐폰
생리 경력이 30년을 넘어가도록 탐폰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탐폰을 빨리 쓴 친구들은 수영 수업도 물놀이도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저 부러워할 뿐이었다.
나도 신세계를 경험해 보려고 1시간을 낑낑거려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픔이나 이물감보단 나중에 못 빼서 산부인과 가야 하나? 혹시 잘못되어 그게 내 자궁 속에서 돌아다니면 어떡하지? 그런 두려움이 더 커서 한 번의 실패 후 더 이상의 시도를 하지 않고 피의 연대기를 다 보냈다.

폐경이 더 가까워오는 나이가 되니 두려움이 사라지고

다시 도전해 보았는데 웬걸 이렇게 수월할 수가!

정말 자유를 얻었다.

탐폰과 생리대 2중으로 장착하니 8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 가도 끄떡없었다. 게다가 굴을 낳는 것으로 비유되는 핏덩이를 울컥 쏟는 불쾌함과 피가 굳어 피떡이 되는 비위생적인 상황도 함께 해결되었다.
동료 중에는 생리컵을 자유자재로 쓰는 신여성도 있는데

난 이번 생에 생리컵까지는 못할 듯.
그래도 탐폰을 쓰기 시작한 나를 스스로 칭찬한다.

해외출장이 많은 여성들은 저 3가지를 꼭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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