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메모지에 여행기 쓰기
여행지에 겪은 일을 가급적 스마트폰에 기록하지 않는다. 대신 숙소에 도착해 호텔에 준비된 메모지를 챙겨 하루를 듬성듬성 기록한 뒤 , 집으로 돌아와 그 내용을 일기장에 옮기며 온전한 문장으로 고쳐 쓴다.
뭘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사냐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손으로' 쓴 글이 보다 정확하게 내 마음을 전한다고 믿는 고리타분한 인간이다.
할 말은 있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쓸 때 수시로 오자(誤字)가 나는 사람도 연필이나 만년필로 글을 쓰면서까지 '고맙스빈다'같은 실수를 하진 않는다. 디지털은 전에 없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아직 완벽한 몸의 연장일순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일기나 여행기를 쓰다 보면 그것도 훈련이 되어서 자신감까지는 아니지만 '쓴다'라는 행위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수준엔 이르게 된다.
더불어 디지털 기기로 급하게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사건명 일테면, 음식메뉴나 영화제목만 기록하는 일과 일기장 위에 문장으로 만드는 일은 많이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내게 일기나 여행기는 필자인 동시에 독자인 내가 이해해야하는 하나의 논픽션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문장은 사실과 달리 가급적 인과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게 어렵다.
여행지에서 내게 일어난 일 중 가급적 기억하고 싶은 일을 이래저래 메모 해 두지만 사건의 제목만 있고 당시 내 기분이나 이유는 끝내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신용카드 전표나 모아둔 박물관 티켓 따위를 뒤적거리며 기억을 완성하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리 기억을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만다. 그건 아무리 있었더라도 내겐 없던 일이 되는 것이다.
여행기란 것도 결국 내 기분의 세상 해석이다. 성경도 결국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을 체험한 '나의 이야기' 아니던가.
※ 타이틀 사진은 미얀마 양곤 호텔의 스테이셔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