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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혁 Jan 08. 2025

지옥에서 돌아온 대학원생 제3화

서른다섯, 마흔 살의 내 발목을 서른 살의 내가 잡지 말자

최근, 해외 인턴십에 대해서 좋은 기회가 있어 이를 지원을 하려고 보니, 나의 Curriculum Vitae(CV)와 TOEFL, IELTS와 같은 영어 성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나, 3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지?’


였다. 길고 긴 대학원 생활 속에서 드디어 나의 객관적 지표, 나의 민낯과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참 쓸 것이 없다. 3년 간 수상 실적도, 논문 게재 실적도 없으며, 영어 공부가 그렇게 필요하다고 얘기를 나도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그동안 하지 않았었던 나는 영어 성적 하나 따지도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에 필요한 논문들을 보고, 강의나 발표 영상들을 듣고 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면서 끔찍한 내 영어 실력에 대해서 한탄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기회에서 이것들이 내 발목을 잡고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쓸 줄은 몰랐다. 발목을 잡고 떨어뜨리려고 하는 자의 얼굴을 바라보니, 지난 3년 동안의 과거의 나였다.


‘이전부터 더 열심히 연구해서 성과를 많이 올려두고, 영어 공인 성적을 비롯해서 영어 실력을 많이 만들어둘걸…’이라는 단순한 후회를 이전에도 좀 했지만(이전에 얘기했듯, 반성과 후회는 행동을 이끌어 내주지는 못한다의 표본이다), 이번에는 그 충격이 좀 다르다. 진짜 실질적인 기회를 놓치게 하는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아니, 이것들은 이후에도 내 발목을 이제 계속해서 붙잡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서, 오늘의 이 큰 충격은 나에게 있어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이번처럼 좋은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내가 남은 대학원 생활동안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내가 대학원을 지나 연구를 하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난 3년간의 나는 내 발목을 잡았지만, 지금의 내가 저 놈들과 함께 서른다섯의 나, 마흔의 나의 발목을 잡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남긴 ‘신경영 선언’에서의 발언이다.


‘바뀔 사람만 바뀌어.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어. 많이 기여해. 적게밖에 못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어서 적게 기여해.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말라 이거야.’


이 발언은 사실, 바뀔 사람은 알아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바뀌어 회사에 기여하되, 잘되기 위해서 바뀌고자 하는 사람을 방해하지는 말라는 발언이었다. 내가 오늘 작성한 주제와는 조금 의미가 다르기는 하지만, 저 발언을 나의 상황에 맞추어 좀 변형을 해보았다. 


미래의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더라도 과거의 내가, 그리고 현재의 내가 그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이미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의 발목을 이미 붙잡은 상황이라면,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미래의 나의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 되며, 되려 과거의 내가 잡은 그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떨어뜨려주어야 한다. 시간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고, 인과성을 가지는지라 우리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에는, 우리는 단번에 손을 완전히 놓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손가락 하나씩 떼어낼 수는 있다.


나는 그놈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겠다. 지옥 속의 악마 같은 놈들. 난 이 자리를 반드시 벗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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