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 고모 박양 고모

크리스마스 이브

by 단단

아홉 살 때였다

동네 작은 교회를 다녔는데 크리스마스이브날 연극을 하게 됐다

동방박사 세 사람 역할을 맡은 나는 이브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교회에서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와 준비를 해서 다시 교회로 가야 했다


막힌 골목 두 번째 그 마당 좁은 집에는 방이 네 개가 있었는데 우리 다섯 식구가 한 개의 방을 쓰고 나머지 세 개는 달세를 주고 있었다

그중 제일 문간방에 술집아가씨 둘이 세를 살았다

나는 그녀들을 고모라고 불렀다


내가 연극 분장을 해야 한다 하니 고모들은 신이 났다

자기들이 쓰던 고데기와 분과 립스틱을 들고 와서 내 얼굴을 칠하고 내 머리를 말아댔다 전기를 꽂으면 쇠꼬챙이가 달구어지는 고데기였다

직모에 단발이었던 내 머리는 고불 하게 적당히 말려갔고 핏기 없던 내 입술은 빨갛게 평온했던 내 눈두덩이는 퍼렇게 칠갑이 됐다

동방박사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그녀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거울 속 내 얼굴은 아역 배우처럼 화려했다


"단단이 진짜 예쁘긴 예쁘다."

"나중에 화장하고 파마하면 남자 여럿 깨나 울리겠다 언니야"

옆에 앉은 엄마에게 덕담인지 농담인지를 해가며 고모들은 분장놀이에 열성이었다


깊은 겨울 교회로 가는 길은 이미 해가 저물었다

흰 타이즈를 입은 아랫도리로 찬 바람이 밀려왔다

얼굴은 상기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화장한 내 모습이 싫지 않았고 무대 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심장이 뛰었다


고모들이 연극을 보러 왔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크리스마스 때만큼은 교회가 빈자리 없이 꽉 차던 그때였으니 어지간한 동네 사람들은 다 구경을 왔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모들은 서둘러 밤장사를 가야 하지 않았을까 그날은 그들에게는 대목 중의 대목이었을 테니..


누런 피부에 눈썹 문신이 진했고 새까만 숏커트 머리에 은이빨이 반짝였던 김양 고모

뽀얗게 화장한 얼굴 노랗게 염색한 긴 머리에 이목구비가 큼직했던 박양 고모


엄마를 언니라 불렀지만 진짜 나이는 알 수 없다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에 그녀들을 떠올리는 것이 불경한 건 아니겠지

엄마는 고모들에게 교회 가자 예수님 믿어야지 전도했을 것이 분명하다

고모들도 그 지긋지긋했을 술집보다는 교회에 오고 싶지 않았을까

정성 들여 꾸며 놓은 내 모습이 무대 위에서 얼마나 예쁠까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녀들에게도 예수님이 임하신 삶이 이어졌기를 기도한다

배아파 낳은 딸의 머리를 땋고 빌로드 드레스를 사 입히고 살을 부비고 살았을 삶이 이어졌기를 기대한다


그녀들도, 무대 위에서 외운 대사를 똑 부러지게 했을 단단한 모습도 그리운 2025년 12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