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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 지아 Dec 28. 2021

야, 너 솔직히 말해 봐

직설적인(?) 네덜란드식 커뮤니케이션

첫 직장인 네덜란드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나서 놀란 것 중에 하나는 업무 외의 회의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회의는 회사생활 전반적인 것에 대해 논의하는 "직원복지회의"였다. 


직원 복지회의에서는 각자 회사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회의 결과는 차장급으로 보고가 되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느냐 와는 별개로 (...) 이런 회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유럽스럽다"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에어컨 온도에 대해서 회의했는데, [너무 춥다] 파와 [너무 덥다] 파가 나뉘어서 토론하는 모습이 생경했다.


델프트의 풍경 Photo by Who’s Denilo ? on Unsplash


어김없이 돌아온 회의 날, 나는 네덜란드어 수업료를 일부 혹은 전액 회사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열정이 넘쳤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두 번, 델프트 공대에서 네덜란드어 수업을 들었다.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을 제외하면 우리 팀 대부분 직원들이 네덜란드인이었기에, 언어를 배우는 게 업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 요청은 인사부의 교육담당에 물어야 할 문제였기에 회의록에 포함되었고 그렇게 별문제 없이 회의를 마치는 듯했다. 그런데 회의 주체자였던 동료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나가려던 나를 붙잡는 것이다.


둘만 남은 회의실에서 그는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너 솔직히 말해서, 네덜란드어는 그냥 네가 필요해서 배우는 거고 돈이 필요해서 회사에 교육비 청구하는 거 아냐?"


그때 난 내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1초쯤 동공 지진이 일어났을 거다. 


네덜란드인들이 직설적이라는데 진짜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당당하게 대응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센 척하며 대답했다.


"맞아, 돈 필요하지! 그래서 요청한 거야."


여유로운 척 입꼬리 올리기. 


그리고 잠깐의 정적. 나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 네덜란드인이고, 내가 네덜란드어를 할 수 있으면 여기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은데? 근속할수록 회사에도 좋잖아."


"뭐 그건 그렇지.."


"회의 내용대로 우선 인사부에 전달만 해줄래?"


속으로 엄청 졸았으면서 그래도 몇 년 동안 네덜란드식 직설화법에 나름대로 적응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질문이었다. 본인이 예산 책정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아, 참고로 네덜란드어 교육비 지원은 받지 못했다. 

2014년에 출간된 책, 에린 마이어의  [더 컬처 맵]


The Culture Map이라는 책에는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하는지, 극단적인 단어 (매우 부적절한, 몹시 프로페셔널하지 않은)를 쓰는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을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지에 따라서 여러 나라를 죽 나열했다.


출처: [The Cultuer Map] by Erin Meyer


네덜란드는 맨 왼쪽 (직접적인 부정적인 피드백)에 위치해 있고 한국은 거의 맨 오른쪽 (간접적인 부정적인 피드백)에 위치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인들의 이런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다른 회사들에서도 자주 회자됐다. 가끔 내가 직설적인 발언을 하고 나서 놀라는 반응이 돌아오면 이렇게 말했었다.


"You see, I'm almost Dutch!"

"나 이제 네덜란드인 같지?"


특히 부정적인 피드백은 될 수 있으면 아끼는 영국인들과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 유럽 내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에린 마이어의 [더 컬처 맵]에는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의 예를 들며, 너무 그들과 같아지려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한국 직원이 자기도 네덜란드 문화에 맞춰서 직설적인 화법으로 바꿨더니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내 의견은 이와는 다르다.


문화가 다른 곳에 왔으니 그 문화에 조금은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디에 포커스를 두느냐가 중요하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너무 공격적인 태도를 갖기보다는 직설적인 조언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하는 방법과, 필요나 상황에 따라 직설적인 대화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덜란드 생활 초기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 익숙해진 문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몇 분 안 계실 것 같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비슷한 일을 겪으셨거나 공감하신다면 댓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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