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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 지아 Dec 29. 2021

차장님, 저 좀 봅시다.

신입사원의 광기

2021년 12월 현재 네덜란드는 실업률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회사들이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서 난리지만, 내가 첫 직장을 구했던 10년 전에는 경제 침체로 인해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비자도 없는 한국인.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였던 어떤 한국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한국 회사의 해외지사에는 들어가자마자 느낄 수 있는 서열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 >>> 현지 사원 > 현지 채용된 한국 사원


나는 현지 채용된 한국 사원으로, 바로 위 상사가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이었다. 


그 상사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오죽하면 한국 본사에서 모르는 직원에게 사내 메신저로 다짜고짜


"**씨, 괜찮아요?" 

"**차장님이랑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같은 메시지를 받았을까.


입사 초기에 (군기를 잡으려고 그랬던 것 같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야근을 해야 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자동차가 없었기에 기차로 통근했는데, 막차를 타면 집에 자정이 넘어 도착하기 일쑤였다.


야근이나 흥미롭지 않은 업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상사는 화도 많아서 크게 실수한 일이 없어도 싸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내 능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시곤 했다.


그렇게 몇 달째 죽을 맛으로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밤. 잠이 오질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비난을 받던 모습이 자꾸 떠오르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웠고,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밤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내가 이 회사를 박차고 나오던지, 들이받던지 둘 중하나였기 때문이다.


밤을 새운 다음 날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차장님이 출근하시고 나는 바로 일어나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차장님, 저랑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하실 수 있으신가요?"


난 회의실에서 그간 쌓인 고충을 쏟아냈다. 저에 대한 인사권이 있으신 분이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하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직원들 앞에서 호통치셔서 너무 힘듭니다.. 등..  다 기억에 나지는 않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내 힘듦을 전달했다.


결국 그분은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고 그 이후로는 눈에 띄게 나한테 감정을 쏟아내는 일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2년간 한국 회사에서 버텼고, 퇴사 후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 상사도 나 때문에 꽤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너무나도 어린 사회초년생이었던 나의 충격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당시에는 나만이 이 피폐한 현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대들었다가 잘리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같은 매일이 반복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괴롭히는 가해자는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많은 한국 회사들의 인사시스템이 괴롭힘을 장려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다들 하는 거지, 남의 돈 벌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지금도 우리 아버지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퇴사 이후에 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 몸값을 올리고 좋은 평판을 받으며 해낸 회사생활이 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업무적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이런 괴롭힘은 없었다.


지금은 회사에서 즐거웠던 일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상사에게도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물론 그분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셔서 지금은 더 높은 위치에 계신다고 들었다. 


Photo by Denis Oliveir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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