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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 지아 Aug 02. 2021

동기부여 편지

첫 글을 발행합니다

(Header: Photo by hannah grace on Unsplash)


지난주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했다. 기다리던 브런치에서 이메일이 와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다니!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첫 번째 신청에서 처참히 떨어지고, 글의 주제를 완전히 바꿨던 두 번째 시도에 성공한 것이다. 솔직히 꾸준히 글을 쓴 경험도 없고, 나의 글을 누군가가 읽어줬던 경험은 당연히 없었는데 이렇게 나를 작가로 받아주다니. 요즘 브런치에서 작가님들이 부족한가?라는 습관적인 자기 비하적인 생각도 들었다. 




유럽의 구인공고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력서와 함께  'motivation letter'를 요구한다. 우리말로 하면 "동기부여 편지"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 편지에는 지원하는 회사의 그 자리에서 왜 일하고 싶은지, 지원자의 커리어 목표와 부합되는 요소는 어떤 것이 있는지, 왜 지원자 본인이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내용이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인사담당자에게 간절히 구애하는 '러브레터'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의 이력서는 크게 재미있지는 않으니, 브런치 첫 글을 "동기부여 편지"로 발행하고자 한다. 


Photo by Lucrezia Carnelos on Unsplash


글로 나의 생각을 담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치유의 과정이고 흔치 않은 몰입의 시간이다.


'장 폴 조그비'의 [뇌과학과 심리학이 알려주는 시간 컨트롤]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나이 든 사람의 '내부 생체시계'가 보다 젊은 사람의 내부 생체시계보다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시간 흐름의 속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연구의 결과를 통감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의 한 학년은 너무나 길었지만 지난 한 해는 너무 빠르게 흘렀다. 어릴 때 혼자서 달걀을 삶아먹겠다고 나름대로 오랫동안 끓인 달걀이 하나도 익지 않은 적이 허다했는데, 지금은 타이머를 맞춰두고 "10분이 이렇게 빠르다고?" 라며 잘 익은 달걀을 까먹는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고부터는 그야말로 '복붙(복사+붙여 넣기)'인 하루하루 덕분에 몇 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어릴 때는 길게 느껴졌던 일 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 Photo by Marten Bjork on Unsplash


2020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순삭'된 한 해였다. 다니던 회사와 불화를 겪고 번아웃까지 치료하면서 나는 외국생활 중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내 직함에 맞지 않는 부장급의 업무를 맡겼고, 떨어지는 매출이 마치 재택근무 탓인 양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무실 출근을 강요했다. 네덜란드의 의료서비스가 어떤지 경험으로 잘 아는 나는 점점 더 위생에 집착하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가야 할 때는 나 홀로 KF94 마스크를 쓰고 점심도 거르는 날이 허다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렇게 힘든 매일이 반년 정도 지속되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됐다.


사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자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심연의 우울함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꽤 길고 복잡한 심리검사를 진행했고 상담 후에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약물치료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며 일을 쉬고 전문의와 상담치료를 하면 몇 달 안에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다. 


회사를 나가지 않으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상담시간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나의 무기력증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당시에 다른 이유로 마음의 치료를 받고 있던 친구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친구는 상담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느꼈다며 본인이 읽고 있는 심리학, 뇌과학 책들을 추천해 줬다. 함께 서너 권 정도의 심리학 책을 정독하고 읽은 내용을 서로 공유했다. 드문드문하던 운동도 다시 꾸준히 하기 시작해서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홈트레이닝, 좋은 날에는 5km 달리기를 했다. 살고 싶어서 노력한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노력과 상담치료로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일기를 쓰는 습관도 기르게 됐다. 이게 어떻게 보면 나의 심리치료 과정에서 제일 가성비가 좋은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책 읽기를 매일 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망각할 정도로 집중해서 매일 일기를 썼으며 말로서 풀어내는 감정들이 구체화되면서 그 무게가 가벼워졌다. 읽는 책의 양이 늘어날 수록 일기 외의 글을 쓰고자하는 욕구도 커져갔다.


네덜란드에서는 한국 책을 구하기 힘들기에 밀리의서재를 통해 책을 읽고 있다. 밀리의서재 모바일 초기화면.


글쓰기는 분명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의 나에게 작년에 겪었던 심리적인 시련이 또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글 쓰는 일은 나의 감정을 정리해 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읽기와 쓰기를 지속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보호해주는 방패를 계속 들고 있는 것과 같다.


처음에 블로그를 하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남을 위해서, 사람들이 찾아볼 정보를 올리기 위해서 주제를 선정하고 준비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이나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공유한다면 읽는 분들에게 작지만 필요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나의 브런치 동기부여 편지, 러브레터를 마무리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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