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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abel Dec 29. 2022

애정을 담은 아이템과의 작별

두 달만에 마주한 처절한 피봇팅

동업자와의 지난 만남 이후, 우리는 바로 아이템 기획에 들어갔다. 첫 기획 회의에서부터 우리가 꽂힌 단어는 바로 이것이다.



갓생. 이 이름 그대로 대학생을 위한 함께하는 루틴 챌린지 앱을 기획했다. ‘내일부터 갓생 산다’는 말이 흔한 일상어로 사용되는 요즘, 우리들에게 갓생은 간절히 잡고 싶지만 결코 쉽게 잡히지 않는 이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인의 삶을 통해 바라보는 갓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좌절감을 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갓생을 선물하기로 했다.



챌린지의 루틴화. 갓생에서는 누구나 새로운 챌린지를 신청할 수 있고, 챌린지 참여를 통해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 수 있다. 기존의 ‘투두메이트’보다 체계적인 목표 달성이 가능하고, ‘챌린저스’와 달리 챌린지를 통한 루틴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우리의 차별화 포인트였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두 달만에 피봇팅을 마주해야 했다.



당시 만들었던 프로토타입 화면들 중 일부이다. 프로토타입을 위한 기본 상세 화면들은 모두 완료하고, 기획 자료들과 디자인한 화면으로 갓생 프로덕트 합류에 대한 개발자 예상 수요도 조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20명 남짓한 잠재 고객들과의 대면 피드백을 통해 갓생의 한계를 강하게 실감했다.


첫째, 유저의 의지에 과도하게 의지한다. 그렇지 않은 서비스가 어디 있겠냐마는, 특히나 이런 루틴 목표 관리 앱은 더더욱 그러하다.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하나씩 하나씩 달성해나가는 '갓생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니즈는 명확히 존재하나, 그걸 완벽히 실현해줄 방법이 없다. (그나마 챌린저스가 '달성하면 돈 준다'라는 현존하는 해답 중에선 가장 현실적으로 매력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 같다.)


둘째, 루틴 서비스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유저가 한 번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기 시작하면, 영영 그 서비스에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갓생을 살아보려고 이렇게 새로운 앱을 깔았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완벽주의 기질로 시작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완벽주의자는 계획을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누군가 볼 수 있는 결과물이 완벽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한 번 미루면 두 번 미루는 건 쉽고 그렇게 뭔가 계속 묻으면 그들은 아예 다시 시작하고 싶어한다. 새로운 곳에서.



셋째, 목표 달성엔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좋다. 군더더기가 많을수록 처음엔 흥미롭더라도 결국엔 그것이 부담감과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갓생 살기'가 우리의 본질인데, 점점 우리 서비스에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이를테면, 일정 성취 데이터나 친구들과의 공유. 물론 목표 달성을 위한 부수적인 장치이지만, 그 모두가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을 돕는지는 애매했다. 특히나 투두메이트처럼, 수익을 위해 광고를 중간에 넣는다면 더더욱 이탈한다.


넷째, 대체재가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그 대체재가 광고도 없고, 군더더기 없어 더 효율적이다. 실제로 잠재 고객들의 경우엔 여러 루틴 앱을 돌고 돌아 iOS 기본 메모 앱이나 노션 페이지를 사용한다는 답변이 많았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너무나 놀랍게도 나 역시도 똑같은 이유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즉, 쉽게 쓰고 쉽게 지울 수 있어 딱 좋다. 미루기도 딱 좋다 ㅋㅋㅋ




루틴 서비스가 벗어날 수 없는 명확한 한계와 그러한 결함에서 비롯되는 뾰족해지지 않는 갓생 서비스를 인지하고서도 그대로 이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아직 개발자를 영입하지 않은 기획 단계이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우리는 몇 번을 돌아봐도 후회하지 않는 피봇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때 나는 가장 중요한 다섯 번째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절한' 피봇팅이라며 부제를 달았지만, 사실 그 당시 우리는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교내 소프트웨어 동아리 OT에서 개발자 구인을 위한 단독 홍보가 바로 일주일 남짓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각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3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두 달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애정을 쏟았던 아이템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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