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확정된 아이디어의 위험성
“아이디어를 너무 빨리 확정하면 거기 매몰된다. 너무 빨리 아이디어를 다듬으면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탐색을 지속하고 더 나은 것을 찾기 어려워진다. 특히 초기의 러프한 모델을 다듬는 데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
- Jim Glymph, Gehry Partners
디자인 태도란, 아이디어를 섣부르게 확정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신중히 고민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설픈 아이디어를 솎아내고 최후의 좋은 아이디어를 선정할 때까지 언제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며 고민을 거듭하는 태도이다. 피봇팅 이전의 첫 아이템 구상에서도, 피봇팅 이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 디자인 태도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개발자 구인부터 서비스 개발까지 타이트하게 정해진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확정지어야 했다. 결국 성급히 확정된 아이디어에 그대로 매몰되어 우리가 선택한 아이템의 가능성을 객관화시키지 못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대로 경험했다. 갓생에서부터 한그릇 아이템까지. 우리가 놓친 한 가지는 ‘이것으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가‘ 에 대한 질문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고, 선행되었어야 할 질문임에도 우리는 이를 놓쳤다.
나름의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서비스를 사업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 사람들이 서비스를 사용한다.
-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다.
초기에 기획했던 대학생을 위한 루틴 관리 서비스인 갓생에서는 1번 항목에 물음표가 찍혔다. 사람들이 과연 이 서비스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당장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우리부터 이 서비스 플로우에 다분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틴 서비스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도 이런 생각에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갓생 피봇팅 이후 우리는 1번 항목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자 할까, 어떤 아이템을 보여야 사람들이 흥미와 재미를 느낄까, 무엇에 사람들은 가장 솔깃해하며 다가올까. 이런 질문들로 시작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은 당연히 모이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수익 구조는 인앱 광고와 제휴 모델로 막연히 구상해두고 있었다. (인앱 광고 수익을 데이터 유지비가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 사람들이 서비스를 사용한다.
-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다.
창업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위의 2가지 명제는 하나의 사슬처럼 묶여있는 관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하나에 더 집중해야 한다면 후자를 택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사용한다’ 라는 첫 번째 명제는 아무리 여러 차례의 FGI 인터뷰와 프리토타입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서비스를 릴리즈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 반면에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다’ 라는 두 번째 명제는 서비스 릴리즈 이전에도 어느 정도 검증과 예측이 가능하다. 보통 수익 모델은 타사의 검증된 수익 구조를 벤치마킹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서비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수익 구조라도 초기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차라리 수익 구조가 확립된 상황에서 서비스를 매력적으로 개선하는 편이 수월하다. 수익 구조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의 서비스가 더 대중에게 흥미롭고 뾰족하게 다가갈 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확히 실패했던 지점이자, 이번 창업 경험이 선물한 가장 귀중한 인사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