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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Nov 02. 2023

당신의 옆 집에 시각장애인이 삽니다.

종종 당황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가 결혼을 해서 함께 살고 있는 세 번째 동네이다. 몇 번의 이사를 하면서 새로운 동네로 가는 것이 나에게도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곳에 나도 적응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시각장애인 남편이 적응할 수 있도록 매의 눈으로 이것저것을 샅샅이 살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그의 무난한 동네생활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의 협조도 종종 필요하다.



얼마 전에 경비원님이 새롭게 오셨다며 인사를 하셨다. 그렇다면 나도 인사를 드리며 할  일이 있다. 택배요정인 그를 위해 미리 손을 써둔다. "0000호입니다. 저희 집에 시각장애인이 살아요. 혹시 택배함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어서 미리 말씀드려요." 이렇게 한마디만 해두면 택배요정은 수많은 상자 앞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자신의 것을 찾지 않아도 된다.



휴직을 했을 때만 해도 하원 후 놀이터로 가는 것이 코스였다. 아이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엄마들끼리 모여 대화를 이어나가는 일도 잦았다. 남편은 다른 아빠들에 비해 퇴근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엄마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놀이터에서 주로 함께 어울리는 엄마들에게도 남편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고,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작년에 아직 말도 잘 못하는 둘째가 아장아장 걸어 놀이터 밖으로 나갈 뻔한 것을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남편에게 알려줘서 잡을 수 있었다.



어느 날 길 끝에서 남편이 걸어오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그를 발견한 아이들은 아빠! 하고 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나와 그의 사이에 나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성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슬금슬금 그녀 쪽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다음 장면이 그려진 나는 다급히 소리 지른다. "나 아니야!!!" 나의 외침으로 그녀는 멈춤 없이 지나갔다.  


오늘 그를 지나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모를 가능성이 더 크다. 그의 장애 때문에 나타난 행동들에 몇몇은 조금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아래는 그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1. 내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서 n층 버튼을 눌렀는데 뒤이어 탄 사람이 n층 버튼을 다시 눌러 끌 수도 있어요. 뭐지? 장난하나? 싶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알고 보면 당신과 같은 층에 사는 시각장애인일 수도 있어요. 버튼이 눌러져 있었는지 몰라서 그런 거랍니다. 인사 한 번 해주시면 그 시각장애인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릴 거예요.  



2. 오늘 당신이 중고거래를 하며 만난 사람, 혹시 물건을 건네거나 건네받으면서 헛손질을 하진 않았나요? 거래장소를 약간 바꾸려고 했는데 상대가 못 찾아 오진 않았나요? 확인해 달라며 사진을 보냈는데 메시지를 읽고서도 답장이 엄청 느렸을 거예요. 사기꾼 아냐? 하고 조금 불안했겠지만 답장은 왔을 거고요. 옆 사람에게 무슨 사진인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느라 조금 늦었을 거예요. 오늘 만난 그 사람, 시각장애인일 수도 있어요.



3. 놀이터에 아이 둘과 아빠가 놀고 있네요. 어이쿠, 아이 하나가 넘어졌네. 아빠는 앞에 서 있는데도 그걸 모르네. 앗 이번엔 아빠가 놀이터 기구에 부딪혔네. 뭐야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거지? 그 아빠, 시각장애인일 수도 있어요. 세상 모든 집중력을 다 끌어모아 아이와 놀고 있는 중이랍니다. 가장 잘하는 것이자 못하는 것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숨바꼭질하기!



4. 물건이 떨어져서 바로 앞에 있는데도 잘 못 찾고 여기저기를 더듬대는 누군가를 봤을 때 도와주시면 어떨까요? 정말 안 보여서 그래요. 우리 남편은 에어팟을 그렇게 잘 떨어뜨려요.



5. 키오스크 사용하시는 사장님! 키오스크가 있는데도 직원분께 주문하려는 사람, 귀찮을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 기계를 이용할 수가 없어서 그렇답니다. 보편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포함해서 어르신, 그리고 시각장애인들도요. 어르신은 보고 누를 수나 있지 시각장애인들은 그것조차 어렵답니다.



6. 공유킥보드 타고 길 중간에 주차하고 떠난 당신! 킥보드는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곳으로 주차해 주세요. 잘 보고 피해 가면 되지 않냐고요? 거기에 걸려 넘어진 사람의 상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까 싶네요. 옮겨라, 어서.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이의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이 아이가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한 명의 장애인이 적응하며 살아가는데도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를 대신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회에 적응하여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적당한 관심과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이 있다면 시각장애인의 아내, 그리고 특수교사인 내가 걱정은 조금 줄이고 마을 안에서 모두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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