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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Sep 10. 2024

歌痕19. Bye, past decade.

How great thou art.

“도망”  

   

   제주에 왔습니다. 2021년, 2022년에 일 보러 여러 차례 왔는데 그러고부터 2년 만입니다.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낮고 푸른 풍경과, 공항의 이곳저곳이 정겨운 느낌입니다.

   약간의 업무와 그보다 훨씬 큰 핑계로 오후에 갑자기 서울을 떠났습니다. 내일 오후에 돌아갈 계획이니 1박 2일이라 하기에는 무척 타이트한 시간. 자투리 없이 보내보려 합니다만 계획대로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령 계획대로 안 된다 한들 뭔 대수이겠습니까. 출발했다는 것,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타지에서의 하룻밤’이 주는 동경이 중요합니다.     


   6월 중순부터 지난 주일까지 단 하루의 휴식을 누릴 겨를도 없이 6개의 행사 준비와 행사와 준비와 행사의 연속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잘 마무리 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감동적인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것도 있고. 산다는 것이 다 똑같지요. 한창 덥고 바쁘던 7월은 또 다른 이유로 몹시 힘겨웠습니다. 내색하기 싫게.

   마침내, 피크가 지나고, 물론 다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숨을 조금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고 나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를 이루고 나면, 무언가 마치고 나면, 바짝 당겨졌다가 툭 끊어져 버린 고무줄처럼, 새로 방향을 정할 때까지 멍해지곤 합니다. 공백, 공허, 나태, 어리둥절 같은 상황이 급습하고 마는 것이지요.이런 때는 도망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도망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멀리도, 오래도 아닌데 말입니다. 오늘이 벼르고 벼른 도망입니다.     




“판매사원”  

   

   어려운 환경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으로 판매사원을 자임하였습니다. 아이템을 고르고 가격 협상을 하고 알리고 부탁하고 기대하고 기도했습니다.

   2천 개, 4천 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신청해 주시는 분들의 문자와 카톡이 주는 벅참을 설명하기에는 제가 지닌 어휘가 너무 초라합니다. 많은 분께서 감동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같은 곳을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지닌 뜨겁고 강렬한 힘을 느꼈습니다.      


   제법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장로님, 제가 신청한 것을 다른 곳에서 필요로 하시는 분께 보내드려 주세요. 저는 물건을 받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제가 선물하면 의도했던 것만큼의 효과가 안 날 것 같아요. 다른 분께서 사용하셔서 더 큰 효과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집사님, 열 분중에 단 한 분이 감동하시고, 그 계기로 청소년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 선물에 집사님의 진심이 담겨 있으시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어느 분께는 캠페인을 시작한 후부터 ‘고객님’이라고 부릅니다. 친밀한 농담이지만 첫 주문을 해주셔서 제가 힘이 부쩍 났기 때문입니다.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음 인연이 된 어느 권사님께서는 ‘조금밖에 주문을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마음이 이 캠페인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지닌 비전과 그를 향한 우리의 기도를 후원해 주시는 것이니까요. 곡진한 마음을 담아 감사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장로님, 제가 200만원을 목표로 했는데 그에 조금 못 미칩니다. 미안합니다. 저희 어르신들은 보온병은 없어도 된다고 하십니다. 아이들을 위한 마음만 받아주면 된다고 하십니다. 물건이 부족하면 안 보내주셔도 됩니다.

   장로님, 제가 꼼꼼하게 챙겨서 보내드릴 겁니다. 텀블러는 물과 차를 마시는 도구가 아닙니다. 진열하고 감상하는 용도입니다.

   짐짓 농담했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어르신들께 대한 감사함은 낯설기만 합니다. 이렇게 뭉쳐진 여러 어른의 넉넉한 마음이 제 마음을 때리시는 것은 생전 처음하는 경험이거든요.      

   

   주문하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의 마음이 다 이와 같습니다. 이제 텀블러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 옵니다. 2주 남짓의 시간이 제게 준 선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기억”   

  

   중고등부연합회에 발을 들여 일한 지 10여 년이 지나갑니다. 보잘 것없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불러 써주시고, 많은 분께서 이쁘게 봐주신 덕분에 즐겁게 일했습니다.

   얼떨떨하고 백짓장만도 못한 믿음의 나이롱 크리스찬이 지노회 임원과 회장을 맡았습니다. 협의회의 임원으로 다양한 경험과 성취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전국연합회에서의 중책을 맡아 좌충우돌 실수와 무리수를 거듭하면서도 지도 편달을 자양으로 삼아 배워나갔습니다.

   

   특별히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하여 코로나19가 잦아들던 2022년까지 꼬박 3년을 전국연합회의 총무로서 일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올해에 전국연합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작은 힘을 보태고, 50년사 편찬에도 부끄러운 얼굴을 내밀 수 있게 해주시니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제가 이런 과분한 복과 행운을 누려도 되는 것일까요? 감사할 뿐입니다.     


   10년이 넘었습니다. 정체되었음을 느낍니다. 욕망과 이기와 아집이 넘실거림에 소스라치는 저를 발견합니다. 제가 차지했던 어느 만큼의 자리가 다른 훌륭하신 분들께서 발을 디디실 공간을 방해하고 있음을 깨우칩니다. 이미 일정 부분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의 계절에, 계절의 미덕과 하나님의 섭리를 좇아 하나씩 떨구어 내겠습니다. 감사와 기쁨과 보람을 담아 단계별로 이별의 인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준비하고 진행하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부끄럽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우리 중고등부에 순전히 드리는 작은 고백입니다.

     

   Bye, past decade!     


https://youtu.be/Yf6C0L_7-CA?si=4hIUrap8f_ALjW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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