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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치혜 Dec 11. 2023

歌痕 3. 찬비-윤정하(1978)

노량진 수산시장의 학

 "아주 예전 비  많이 오던 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모였던 날이 기억나네 ㅎ "    


    아침에 동기들과 카톡하다가 친구의 코멘트에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랬었지, 노량진.     

    신입생같던 2학년 시절. 당시 유행하던 향어랑 거 뭐냐 아나고, 광어에 맛들려 제법 다녔네.

    그날도 수산시장 맨 끝에 있던 상차림집이었지. 나름 단골집, 뚱뚱이 할머니가 카운터에 앉아서 장비같은 목소리로 종업원들을 지휘하던 가건물 같던 식당.  장사가 잘 되니 그렇게 확장했겠지. 식당을 몇차례에 걸쳐 이어붙여 꼬불꼬불 미로처럼 바닥을 넓히고 허술한 루핑과 천막, 비닐로 지붕과 벽을 세웠던 집이었어. 

    비가 세게 오니 지붕과 비닐 벽에 후두두두 빗방울이 부딪고, 그 빗소리에 청량리와 인천과 수원으로 내달리는 지하철 열차 소리가 섞여 운치가 제법이었지.

   우리는 '거리에 찬 바람 불어오더니' 같은 노래도 자분자분 부르며 문과생으로서의 낭만에 젖다가 - 누구였는지 생각이 안 나는 우리 중 누군가의 여자애인이 동석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낭만의 고조에는 직빵이었던 듯 - 누군가의 제안으로, 누군지 뻔하지만,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돌아가며 삼행시를 짓고 건배를 하고, 말도 안되는 오언절구를 읊고 건배를 했어. 동석했던 누군가의 여자애인은 생글거리면서도 속으로 이런 욕을 했을지도 몰라.      

    '이 불쌍한 ㅇ문과 룸펜 새퀴들. 이래서 문과대 애들 만나지 말라는 거였어! 암만!'

   그랬거나 말거나. 어차피 헤어져 누구의 애인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뭐.

    주위의 아저씨들이 고성방가에 욕지거리, 지분거리는 음담패설로 분주한 가운데 우리는 젊고 우아한 몇 마리의 고고한 학이었다니까!    

 

    못 믿겠다고? 거울 보라고?     


    하긴, 나도 못믿겠다 ㅋㅋ


    오늘 저녁부터 제법 많은 비 예보가 있다. 비 핑곗김에 번개로 모이자고 던져봤지만 가정의 달에 아저씨들은 바쁜 법이고 그러다 보면 이달도 어느새 훌쩍 지나가리.     

    2025년 9월에 마치는 50년사 출간 프로젝트의 집필과 일부 편집을 맡았다. 지난주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편찬위원 한 분이 내게 외쳤다.     

    "건강하셔야 돼요. 아프시면 안 돼요!"     

    '아니 무슨 팔순 잔치에 며느리에게 덕담 듣는 것도 아니고' 하면서 웃어넘겼지만 '이런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야 하는 나이인가' 덜컥 무거워졌다. 길다면 길고 짧게 보면 짧은 기간이지만 일정한 시간을 무탈하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책임감이 문득 생경했다. 이런 마음에서인지 5월 말과 6월 초에 있을 두 개의 행사도 함께 준비하는데 예전보다 제법 '비장'하기로 했다. 그런다고 감격스럽게 비장해지기야 할까마는 앞으로 만나는 모든 상황에 전보다는, 옛날보다는 한결 신중하고 극적으로 대해야 하겠다고 생각해 본다. 백업도 더욱 철저히, 기록도 더욱 꼼꼼히 말이다.     

    추억은 때때로 철쭉처럼 선홍으로 짙은 채 저만치에 있고, 미래는 젊은 날의 그것과는 다른 조바심으로 가득하다. 그런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저녁 비가 기다려진다. 폼나게 막걸리를 한 잔, 아니 한 통 마시리라, 캬!


https://youtu.be/lD1gkyfBp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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