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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Jul 14. 2021

천 피스 퍼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성향이나 습관 등을 배경지식으로 활용해 말과 행동을 다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 그 사람과 주파수를 맞춰 서로 다른 두루뭉술한 표현들 속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좀 더 정확하게 전송받고 싶은 바람에 나오는 행동이다. 섬세한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말 하나하나의 의도와 뜻을 캐치하기 위해 좀 더 세심하게 행간을 읽기도 하고, 터프한 성격의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조금 거슬리는 표현도 별 뜻 없이 말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넘겨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해석이라는 게 아무리 섬세하게 한다 한들 결국엔 '미루어 짐작'이라 오류 없이 전송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학습을 하고 싶었던 건데 판단(추정)을 하고 있을 때가 많고,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했던 건데 오히려 꼬이고 꼬여 풀기가 더 어려워진다. 때론 학습된 덩어리들이 편견으로 변이 되어 암세포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나는 그런 오해와 편견을 늦지 않은 타이밍에 알아채고 정정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해석의 여지가 많지 않도록 사족 한 마디씩을 덧붙여주는 사람들이 참 고마운데, 예를 들자면

"이게 좀 예민한 내용이라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어. 너를 지지하는 마음을 일단 전제로 깔고 들어 봐.",  

또는 "나한테 했던 부탁 거절해도 되니? 내가 무리해서 그걸 해내다가 너한테 마음이 상하게 될까 봐 걱정돼."

와 같은 직선 같은데 둥근 화법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눈이 똥그래지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센스를 가진 사람이.. 있다 현실에.)

 실존 인물인 이 사람은 과거에 내가 만난 지 얼마 안 된 뉴페이스 연인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분께 친히 '주은 사용법'을 십계명처럼 읊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내가 너무 손쉽게 간파되는 것 같아 민망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고 고맙다. 거기서 내 사용법이 어떻게 미리 준비한 멘트처럼 줄줄 나오는지, 오답도 없어서 그냥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우리가 만났으면 속 썩을 일이 한 개도 없겠다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 사람을 가까이 만나는 행운은 흔하지가 않다. 내 맘 알아주는 것은 고사하고 본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열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은 특별하고 어렵다. 또 조금은 피곤하기도 한 과정이다. 마음이 마음과 맞닿을 때까지 가로질러야 하는 크고 작은 오해 가마니들을 요령껏 피해 가기도, 위험을 무릅쓰고 기폭제를 설치하기도 해야 한다. 놀라운 팀워크로 효율을 발휘하면 조금은 수월해지겠지만 아무튼 서로의 진심이 닿으려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 새롭게 만난 사람 중에 나와 맞는 퍼즐 조각일 것 같은 이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모양도 색감도 비슷해 가까워졌는데, 막상 맞춰보려니 들어맞을 듯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마치 모든 조각이 비슷비슷하게 생겨 난이도가 높은 천 피스짜리 퍼즐 같았다. 물론 천 피스 퍼즐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언젠가는 분명 완성되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조각을 몇 번 만지작대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 퍼즐을 완성해냈다면 어떤 모양이었을까, 꽤 근사했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각들을 정리했다.


    포기하는 일을 제법 자주 반복하게 되면서, 나는 앞으로 살면서  개의 퍼즐을  맞추기에 성공하고 포기하게 될까 궁금해진다. 해석하는 일을 그만두면  쉬워지려나. 의지로 그만둘 수 있는 영역이긴 한건가.



    가지 쉽지 않은 바램을 가져보자면, 죽기 전까지  번이라도 타인과 완벽히 일치하는 주파수에 동시에 머물러보고 싶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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