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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Jul 14. 2021

프롤로그

갑자기 글을 쓰는 이유.



    어릴 때 상상하던 나의 어른이 된 모습은 아주 변화무쌍했습니다. 가장 어릴 땐 잠시 엄마가 꿈이었다가, 조금 더 큰 후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가, 의학 드라마가 유행일 때는 의학박사가 되기도 하고. 고3 수능 볼 즈음엔 현실과 타협해 앞에 한 글자를 더 붙여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우린 뭐든지 될 수 있었던 나이였습니다.



    8살부터 13살의 주은을 회상해보자면 낱장 클리어 파일이 뚱뚱해지도록 상장을 열심히 모으는 어린이였는데, 대부분 우리들의 8살부터 13살이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초등학교는 각종 경시대회와 미술대회, 백일장, 웅변, 체육대회, 회장 선거 등의 이벤트가 늘 존재해서 '네가 주인공인 분야가 하나는 있단다'라고 알려줄 구실이 고갈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요. 애들마다 꼭 특출 난 주력 재능이 있어서 자기 이름보다도 '수학 진도 3년 빠른 애' 라던지 '4반 수영선수'등의 특징으로 더 자주 불리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내가 꼭 받아야 한다고 욕심을 냈던 상들은 영어 스피킹이나 포스터 그리기상, 줄넘기상 등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분야의 경우 한눈에 봐도 나보다 나은 애들이 많았던 것을 인정했던 나름 쿨한 초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존심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한 분야도 있었습니다. 백일장과 같은 글짓기 대회나 수학경시대회는 같은 주력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견제했고, 최우수상을 받아 기뻐했고, 이따금씩 장려상을 받아 속상해하기도 했습니다. 그게 그 시절의 내겐 가장 중요한 이슈들 중 하나였습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중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초등학교 때 기를 쓰고 받아냈던 상장들이 생각만큼 특별한 재능의 증거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상을 좀처럼 받지 않던 친구들이 국어와 수학 시험에서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걸 보았거든요. 천천히 천천히 평범해지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애들도 점차 특징보다는 몇 반 누구로 불리는 일이 많아졌고,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새로 만났지만 우리는 다 비슷한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더 이상 상장들로 기쁨을 얻을 수 없게 된 시기에도 오랜 기간 동안 내 안에서 발광했던  글이 있어서 잠시 자랑해 보자면, 13살 때 가장 좋아하던 소설인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읽고 쓴 독후감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한 번씩 그때의 독후감 수상작 모음집을 펼쳐 목차 바로 다음 장에 실려있는 정주은 어린이가 쓴 글을 읽어봅니다. 그 글은 강남구 초등학생 부문에서 1등을 수상했지만, 커서 다시 읽어보니 다른 친구들의 수상작보다 유난히 잘 쓴 글은 아니었어요. 비슷비슷했고, 아마도 그때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애들이 출품을 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운이 좋았던 거죠.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운 좋게 강남구 일등을 한 경험이 있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던 13살의 주은은 이미 무엇이 돼서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30살 주은으로 자랐습니다.

 지금은 어릴 때 상상했던 내 미래 모습보다는 덜 특별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옛날 이후로 적어도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의 나는 늘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고,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놓지 않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이 글을 적기 시작한 거겠죠.


 

    앞으로 쓰려고 하는 저의 부족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첫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를 좋아하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겠죠.(아마도?)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간에 좋은 방향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것이 열세 살 시절로부터 비롯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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