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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은 Jul 15. 2021

만월(2017)

    불운은 도처에 늘 도사리고 있노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피해 갈 줄로 알았다.

행운은 어렴풋이나마 예측을 할 수 있으나, 불운은 대비할 수 없어서 더욱 극적인 감정 변화를 주는 것 같다.


    2주 전 아빠와 엄마의 대화 내용이 심상찮았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얼핏 엿들은 내용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있구나 짐작이 되었지만 모르는 척 평소처럼 집을 나섰다. 거실에서 그리도 크게 얘기한 걸 보면 애초에 엄마 아빠는 내가 먼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봐주길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 것이거나. 나와 동생에게 아빠가 편도암 4기라는 사실을 말하기까지 부모님에게는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고, 함께 모인 자리에서도 쉽게 말을 시작하지 못하셨다.


    엄마가 먼저 아빠의 병을 얘기하셨고, 아빠는 꼭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셨다. 그래도 흡연자로서 걱정하던 폐암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했고, 우리 가족 구성원중에 누가 아파야 한다면 본인이어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내가 그 습하고 무거운 공기를 휘저어보겠다고 뭐라고 말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빠 그래도 참 대담하다.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으로 얘기해?" 하고 도움도 안 되는 얘기를 어색하게 늘어놨던 것 같다. 불운을 감지하고 혼자 병원을 찾아가 (심지어 아빠는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다) 검사받으며 별별 생각을 다했을 아빠 마음과,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엄마 마음이 중첩되어 마음이 쓰라렸다.


    다음 날, 회사에서 몇 번씩 울컥해서 화장실에 갔던 것 같다. 회사분들께 수술 날짜는 배려해 달라고 할 수 있었지만, 감정적인 부분까지 양해를 부탁드릴 수는 없었다. 팀 분위기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덤덤한 표정으로 아빠의 수술 날짜를 말씀드렸고, 너무 슬퍼하기도, 하지만 즐거워하기도 눈치 보이는 열흘 가량의 시간이 있었으며, 밖에서는 웃기는 얘기에 하하 웃다가도 순간 밀려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빠가 아프다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웃고 떠드는 게 정상인가 싶었다. 집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더 심했다.


    심각한 내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무고한 사람들이 괜히 짜증 났으며, 나는 이 사람에게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렵게 얘기한 건데 성의 없는 힘내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 어느 때보다 서운하기도 하더라. 물론 그들도 나만큼이나 흔히 겪는 상황이 아니어서 서툴었던 거겠지만..


    아빠는 11월 13일에 병원에 입원했고, 처음엔 병원복과 링거 걸이를 어색해하더니 나중에는 수술 준비를 위해 간호사가 아무렇게나 밀어버린 구레나룻과 수염을 보고 무척 당황해했다. 아빠는 늘 나름대로 본인 스타일의 멋을 챙기던 멋쟁이였는데, 조금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수술 시간은 오전 8시였다. 속없게시리 이모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틀 녘 성수대교가 얼마나 찬란하고 멋있던지, 눈물 날 정도로 벅찬 광경이었다. 어둠이 길게 남아있는 어느 초겨울날 아침. 미처 스러지지 않은 슈퍼문이  유독 빛나고 성스러운 날이었다. 이 시점부터 만 하루 동안의 기억이 거의 없지만, 달리는 차에 담겨 멍하니 달을 바라보며 한 가지 생각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수술 과정이 순탄치 않으면 꽤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시술을 거쳐야 한다던데.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다행히 아빠는 예정되었던 방법 그대로 수술을 잘 마쳤고, 물 한 모금, 고개 까딱 한번 제대로 못하고 낮과 밤의 경계가 없는 중환자실에서 약 120시간가량 시간을 세며 견뎌냈다.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실로 옮겨 4일, 그리고 일반 병동에서 약 열흘간의 시간을 더 보냈다. 정말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새벽에도 몇 번씩 가래 석션을 해야 하는 탓에 엄마는 그 기간 동안 한 번도 집에 오지 못했고, 나는 고스란히 남겨진 집안일과 회사일, 그리고 엄마 아빠 걱정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었다. 동생도 나름대로의 책임감과 날 서있는 상황들에 지쳐 있었어서, 이때 우리 자매는 처음으로 울고불며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어느 새벽에는 갑자기 아픈 가지를 데리고 동물병원 응급실에 가면서 마음이 내려앉았고, 뜬금없는 사람의 위로 전화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일도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신경안정제도 먹어보고. 하여튼 간에 진짜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아빠는 훌륭하게 수술 회복을 마치고 항암 방사선 치료 2 차를 끝냈고, 거의  달이 넘는 시간을 음식을 넘기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2016년을 되돌아본다면 삭제하고 싶은 시간이기보다는 감사했던 해에 가까운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는지 여름휴가로 친구가 아닌 가족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으며 가을엔 다 함께 계획에 없던 제주도를 다녀왔던 게 참 많이 위로가 되었다.


    아주아주 힘들었지만, 힘든 일이 있어서 힘낼 일도 있었고

소중한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따뜻함에 둘러싸여 안락했던 2016년이었다.


올해 겨울이 끝나면 아빠의 치료도 끝날 거고, 돌아오는 여름에는 또 함께 해외여행을 갈 거고, 가을과 겨울에는 어떤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게 되었다.

이만하면 좋다고, 감사할 것이 참 많았다는 송구영신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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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부터 20일까지 작성하던 글을 이제야 마무리해봅니다.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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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서일까요, 이때 나는 어떻게 지냈고 무슨 생각을 했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거의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당시 이 시기를 기록해 두어서 참 다행입니다.

20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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