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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Apr 20. 2022

소년과 할아버지


"어머나..우크라이나 어린아이가 혼자 기차를 타고 1200키로 떨어 친척집을 찾아갔데요.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즈음. 주말이라 방문한 친정집에서 연로하신 아버지와 어지러운 세상을 탄식하고 있었다.


"참..그러고 보니 나도 625사변 났을 때 친적 아주머니 댁으로 피난을 갔었지."


친적 아주머니 댁으로 피난을 가셨다고?  부모님이 전쟁을 직접 겪으신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분들의 스토리를 자세히 들어본 적은 없다.

기사를 접한 후로 그 자그마한  우크라이나 아이가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헌데 마치 그 아이가 자라서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과장된 상상이 더해지니 몰랐던 사실이 아닌데도 아버지의 인생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워낙 말수가 없으신 분인데다 술도 안 드셨다.   술주정에 섞인 이른바 "라테는 말이야" 의 신세 한탄은 아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미래다고 했는데, 부모의 과거에 무관심한 자식들에미래가 있을까?

나의 둔함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평생을 함께 했는데  이제야 그의 전쟁스토리가 궁금해진 막내딸의 질문 공세에도

 아버지는 귀찮은 기색없이 조근 조근 답해주셨다. 마치 남의 일 이야기 하듯이.


핸드폰도 티비도 없던 그시절. 시골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은  어떻게 전쟁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대체 언제 어떤 포인트에 이때다 하며 짐을 싸서 피난을 걸까?


"소문이 나서 전쟁이 났구나 알고는 있었지.  그러다가 포탄이 주변 논밭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니 가족들과 같이 떠나야 된다.. 했던 것 같다."


깜짝 놀랐다. 포탄이 집주변 논밭으로 떨어졌다고? 2차 세계대전을 다룬 고퀄의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나 봤던 그런 포탄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놀라서 거듭 물어보는

 나를 마치 이해력이 한참 떨어지는 학생을 쳐다보는 선생님처럼 쳐다보셨다.  


 말하자면 아파트 우리 동 바로 뒤에 있는 작은 뒷산으로 포탄이 계속 떨어졌다는 것인데  그 상황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의 호들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버지는 그냥 그렇게 해서 가족들과 함께 아랫동네에 사시는 친척아주머니 댁으로 무작정 걸어갔다며 이야기의 진도를 쭉 빼셨다. 워~~워~~ 여기서 이렇게 훅 지나가시면 안되지. 나는 집요하게 포탄 이야기로 아버지를 추궁했다. 무섭고 끔찍하고 두렵지 않았냐, 그 일이 자꾸 생각나 나중에 힘들지 않았냐.

아버지는 간단 명료하게 '그렇지 않았다'로 답하셨다.


아버지의 표정과 말투로 미루어보아도 정작 당신은  괜찮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로서는  쉽게 수궁하고 넘어가기 힘들었던 것이 2022년에 듣는 1950년의 이야기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장애, 우울증으로 가득차 보였기 때문이다.  주저없이 단답형으로 괜찮다고 답하신 아버지 당신의 멘탈은 마치 아이언 맨이라고 된단 말인가요?


사실 내 아버지만 유독 특별히 강하신 것이 아니다.  여든을 앞두고 처음 글과 그림을 배운 전라도 순천 할머니들의 그림 일기 '내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냐' 를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호들갑을 떨었던 아버지의 포탄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린 동생을 업고 가는 피난길에 동생이 죽었지만 딱히 묻을 사정이 안되어 그냥 계속 업고 피난을 갔다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는 막말로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내가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이런 일들을 겪고도 이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 냈다.  가정을 꾸리고 치열하게 돈을 벌고 지치도록 아이들을 키우며 어른 노릇을 했다.  평범하지 않은 고난이 인생에 훅 들어왔지만 쉬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다. 그러다 결국은 그 당시 모든 이들의 로망-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들과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 을 실현한다. 결국은 해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의 회복 탄력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났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낼 걱정이 먼저이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일까?


"그땐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하지 않았지. 그래서 생각도 그냥 단순하게 하고 다들 살았던 것 같아"

아버지가 덤덤히 말씀하셨다.


 그 시절, 힘들지만 지금보다 단순했던 세상이 아버지를 오히려 강하게 만든 것일까?  할아버지가 된 지금의 아버지를 보아도 그가 일상을 대하는 방식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치매를 동반한 지병이 있는 아내의 케어를 도맡아 하시니 그의 일상이 결코 쉽거나 단조로워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하루를 버티는 와중에도 거실에서 키우는 화초에 꽃이 피면 좋아하시고,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시원하게 분수를 틀어주는 날이면 아이처럼 나가서 구경을 하신다.  지나온 세월이 그에게 보여준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그의 일상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기사로 접했던 우크라이나 소년은 다행히 슬로바키아 친척의 집에 잘 당도했다고 한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만약 나의 아버지와 이 소년이 만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만나서 서로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세상을 보여준다면.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소년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면 좋겠다. 주름가득한 아버지의 눈가에 언뜻 보이는 그 평안함을 이 소년도 그의 세월을 홀로 버티며 가질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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