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혼자의 결혼 추천서
나는 늘 고민이 많은 편이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특히 그 일이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일수록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고민의 시간은 길지만 결국 고민 끝에 어떤 결정을 내렸을 땐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고민의 시간 속에서 이미 후회의 시나리오까지 모두 그려보고 그때의 대처방법까지도 다 미리 고민해 놓기 때문이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 나는 단호했고 후회하지 않았다. 직장생활 1년째 되던 해, 나는 이미 이곳이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고 퇴사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의 판단이 정확한 것인지, 이 순간의 판단으로 평생 후회하지는 않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마음 안에 아주 정밀한 양팔 저울을 세워놓고 아주 작은 티끌하나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이 직업의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했다. 그리고 그렇게 3년을 더 저울질한 끝에 첫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저울질을 끝내던 날, 내 눈은 확신에 가득 차있어 그 누구의 설득,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늘 미적거리지만 결정을 내린 후엔 단호했던 내게도 끝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해 장단점 저울을 치워버리게 만든 것이 있다. 바로 ‘결혼’에 대한 것이다.
학창 시절, 몇몇 친구들이 환상으로 가득 찬 결혼 로망을 이야기하던 시기에 나는 결혼의 장단점 저울을 세워놓고 수평을 맞췄다. 가정의 불화를 마주할 때 양팔 저울의 단점 접시 위에 그 고통만큼의 돌덩이를 올려놓았고, 화목한 가정 속에 자라난 밝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드는 시기심만큼의 돌덩이를 장점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20~30대를 보내면서 저울은 더 자주 요동쳤다. 결혼 적령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뒤로 밀리면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좀 더 여유롭게 유예되긴 했지만, 어쨌든 이 결혼이라는 것은 젊은 날에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인생의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시시때때로 저울질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데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는 게 과연 행복할까? 결혼 전엔 멀쩡해 보였는데 결혼하고 나서 돌변하는 이상한 남자들도 많다는데 그런 이상한 남자와 사느니 혼자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에게 가사, 육아의 책임이 더 과중하게 부여된 경우가 많다는데 내가 굳이 내 발로 그런 고통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차치해 두고서라도, 일단 모아둔 돈이 얼마 없다. 내가 가진 이 정도의 돈으로 감히 결혼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은 이 많은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일까?
내가 바라보는 현실 세상, 그리고 인터넷 세상 속에서는 이러한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남녀갈등이 시시때때로 들끓었고 세상은 마치 내게 결혼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저울도 단점 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저울이 완전히 한쪽으로 명확하게 쏠렸던 적은 없었다. 세상의 수많은 말들이 저울의 단점 접시 위에 돌덩이를 올려놓아도 장점 접시 위에 올려진 한 가지가 무게를 바꿔가며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어냈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는 바로, 그 모든 단점이 없는, 나와 잘 맞는 누군가를 혹시라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그 모든 불행의 씨앗을 가지지 않은, 나와 사고방식이 비슷하고 세상의 상식의 틀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서로 조금 생각이 다른 부분은 사랑과 대화로 서로 양보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롭고 다정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런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만 있다면.
만약 그런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매일 일상 속 자잘하게, 때론 제법 묵직하게 나를 치고 할퀴고 가는 세상의 냉혹함도 둘 사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어 농담처럼 넘겨버릴 수 있을 텐데. 문득 찾아오는 불면의 밤, 오롯이 혼자라는 느낌에 몸서리치게 외로워질 때 서로의 살갗을 맞대고 문지르며 느껴지는 온기만으로도 잠시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을 텐데. 앞으로 나이가 들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었을 때 마지막까지도 서로의 곁에 남아 오랜 세월을 함께 애쓴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을 텐데.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내가 어떻게 해나가느냐’까지. 좋은 사람을 만나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 수 있다면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혹은 만났다 하더라도 내가 배려하지 않고 내 이익과 손해만 따지려 든다면 결혼은 단점투성이의 나쁜 선택지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일단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했고, 그것은 내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운명에 좌우되는 일인 것 같았다.
생각이 그곳에 미치니 나는 마침내 결혼의 장단점 저울을 치워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종종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 잘 모르겠어요.” 나는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며 결혼을 운명에 맡겨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던 어느 날, 생각지도 않던 순간에 좋은 사람을 만났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그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막상 결혼을 하니, 결혼 전 내가 열심히 저울질을 하며 머리로 했던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다. 부모님의 돌봄 속에서 벗어나 내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물론 힘든 점도 많았지만 내 취향, 내 생각이 많은 부분 반영된 살림을 스스로 차려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혼자 독립을 했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겠으나, 결혼은 두 사람의 경제력이 합쳐지는 일이니 혼자 독립할 때보다는 조금 더 넉넉한 살림이 차려질 수 있었기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특히 결혼한 지 오래된 주변 어른들이 어쩐지 결혼 전보다 나를 더 친근감 있게 대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 ‘결혼’이라는 공통점을 하나 공유한 사이가 된 것이다. 그 미묘한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대신 미혼의 친구들과는 미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그게 싫어 모두 빨리 결혼하라고 농담 삼아 독촉을 하고 있기는 하다.
챙겨야 할 사람이 배로 늘어난 것은 예상보다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나 하나 겨우 챙기고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조금 신경 쓰는 정도였는데, 결혼을 하니 떨어져 살게 된 부모님에게 결혼 전보다 신경이 더 많이 쓰이게 됐고 그와 동시에 남편의 부모님도 함께 챙겨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에 더해 남편과 나 서로의 형제자매, 친척들과도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고 경조사를 챙겨야 하는 일이 생기니 가족 행사가 두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게 버거운 일이라면 버거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 그 모든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지니 버거움 보다는 든든한 가족이 배로 늘어난 느낌으로 바뀌었다. 힘든 짐은 더 여럿이 나눠지고 좋은 일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을 수 있어 배로 행복해졌다.
집안일의 분담, 삶의 방식의 차이, 경제적 문제 등으로 서로 갈등하거나 극복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밤이 되면 서로의 하루를 보듬고 시답잖은 농담과 장난으로 투닥이다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잠에 든다. 나는 요즘, 그 순간 잠시뿐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한다.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결혼이라는 것, 꼭 해야 할까? 요즘은 결혼 굳이 할 필요 없다고, 어떠한 경우엔 인생을 망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일수록 더 선택이 고민되기 마련이다. 만약 결혼 전의 나처럼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결혼은 세상의 말들만큼 그렇게 거창한 비용이 들거나 서로를 괴롭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고.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많다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을 불행이 아니라 행복으로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아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이끌어간다면 결혼에 대한 고민이 무색하게 결혼은 인생의 아주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세상에 정해진 올바른 선택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이든 선택한 이후에 본인이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그 선택의 의미가 달라진다. 나는 나의 결혼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고난을 모두 온몸으로 감내하고 수많은 행복의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먼 훗날 결혼의 순간을 회상했을 때 그럼에도 결혼을 해서 그 모든 것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결혼은 멋진 선택이었다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결혼도 참 좋은 선택지 중 하나라는 것도. 우리 모두의 선택과 행복한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