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고 나니 임산부 배려석의 존재가 소중하다. 사실 임신을 하기 전의 나는 꽉 찬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임산부 배려석 앞으로 밀려와 서게 되었을 때 그곳에 앉고 싶어 안달하던 마음을 늘 애써 무시하곤 했었다. 당장이라도 꺾여버릴 것 같은 무릎, 전날의 피로와 가방끈의 무게로 짓눌려버린 어깨가 임산부 보호석에 털썩 앉았을 때 느껴질 안락함을 간절히 갈망했지만, 그 갈망이 내 체면을 이길 만큼 강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그리 뻔뻔하지 못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닌 내가 저 자리에 앉는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했다. 더불어 나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 한 인간으로서 임산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양심이 발현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나는 비록 체면 때문에 그 좌석에 앉지 못하지만, 지하철 안에 인파가 가득 차 숨쉬기조차 어려운 날이면 내 옆에 서있는 누군가라도 그 좌석에 앉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 사람만큼의 공간이라도 생기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임산부 배려석의 존재가 원망스러워졌다. 이렇게 붐비는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는 임산부건 아니건 다 힘든데 작은 공간 한 뼘마저 아쉬울 판에 저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엄청난 비효율이 아닌가. 그러나, 그러다 정말로 임산부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그 좌석에 앉는 모습을 보게 되면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끌끌 차곤 했다. 남몰래 그 사람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뻔뻔한 인간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나, 어떤 차림새를 하고 있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표정을 하고 저 자리에 앉아있나, 생각하며 꼬투리 잡을 것을 하나하나 찾아내려 했다.
그 순간의 분노와 미움의 감정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고 나는 감히 고백하고 싶다. 내 다리도 너무 아픈데, 내 몸도 너무 피곤한데, 고단하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동시에 사회적 규칙들을 성실히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성실하고 평범한 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힘겹게 출퇴근길을 견뎌내야 하는데, 뻔뻔하고 이기적인 저 사람들은 사회적 규칙 따위, 배려의 마음 따위 쉽게 내던져버리고 저렇게 편하게 사는구나 싶은 억울함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앉은 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사람은 좀 더 용기 있게 자리에 앉았을 뿐이고 나는 앉고 싶었지만 차마 앉지 못해 앉은 사람들을 욕하고 있는 것일 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일부러 임산부석이 있는 쪽을 피했다. 어차피 그쪽에 가면 나는 앉지도 못하고, 가끔씩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화만 나니 내 정신건강을 위한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산부석의 존재는 잊혀갔고 가끔 한산한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서 언뜻 임산부석을 바라보면 대체로 비어있어 아직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임신을 했고, 임신을 하고 나니 세상은 위험한 것들로 가득 차 보였다. 인스턴트식품, 미세플라스틱, 미세먼지,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매일 출퇴근을 위해 이용하는 대중교통 내 인파까지 두렵게 느껴졌다. 그런 내게 임산부석의 존재는 다시 크게 다가왔다. 임신을 갓 확인받았던 임신 초기, 보건소에서 임산부 배지를 받고 소중히 집에 가져와 늘 들고 다니는 가방에 어디에 매달지 한참을 고심 끝에 매달았다. 출퇴근길 어떡해서든 안전하게 임산부석에 앉아서 가고 싶은데 이 배지가 없다면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닌 지금의 모습으로 임산부석에 앉기가 너무 눈치가 보일 것 같았다. 처음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출근길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날, 나는 많은 인파 속에도 비어있는 임산부석과 사람들 틈을 비집고 어떻게든 그곳으로 가기만 한다면 안전하게 앉아서 출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임산부석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 입덧으로 지쳐버린 몸, 그리고 인파에 밀려 배가 압박되거나 숨쉬기 어려워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 없이 감히 평소처럼 대중교통으로 출근할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임산부석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나의 순진한 상상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일단 임산부석은 비어있지 않았다. 임신 전엔 잘 눈에도 띄지 않았던 임산부가 막상 눈여겨보니 생각보다 많아 임산부석에 임산부가 앉아있는 경우가 꽤 있었고,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아있는 경우는 더 많았다. 임산부석이 비어있지 않더라도 일단 내가 배지를 차고 있으니 그 앞으로 가면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은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일단 좌석에 앉아있는 분들은 내 기대만큼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았다. 그분들의 속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겠으나 추측해 보자면, 양보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앉아있게 되면 계속 두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지 않는 한,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 내에서 임산부 배지를 찾아내기가 쉽진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 화면만 보게 되니 앉아서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보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에 달린 배지를 발견하기는 더 어려워 보였다. 물론 아예 양보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예 눈을 감고 있는 사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한껏 숙인 채 핸드폰만 보는 사람, 내가 바로 앞에 서있어 분명히 내 배지를 바라보는 모습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 등…. 임산부석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때는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임산부가 아닌 채 임산부석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가끔 한두 명의 사람들만 그런 행동을 할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좌석을 비워두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막상 임신을 하고 매일매일 그 좌석 앞에 서 있다 보니 그 자리가 임산부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한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런 일을 계속 겪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매일 출퇴근길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임산부인데 임산부석을 이용할 수 없나. 임산부가 아닌 누군가가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며, 나는 내 안에 솟아오르는 분노에 못 이겨 남편에게 카톡으로 그 사람 욕을 한껏 적어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면 나의 분노는 조금 이기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나는 사실 다른 임산부에 비해 컨디션이 좋은 날들이 많은 편이었고 지하철을 이용한 통근시간이 20분밖에 되지 않았다. 인파가 심한 구간이라 서있기 힘든 날들도 많았지만 어찌어찌 힘들어도 결국 20분만 바짝 견디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임산부석을 확인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누군가의 무심함에 자꾸 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어차피 서서 갈 거 임산부석이 없는 게 낫겠다 싶었다. 임산부석이 없었으면 그 자리에 앉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을 바라볼 일도,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드는 분노의 감정을 마주할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어차피 앉지도 못하는 건 똑같으니 말이다.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나도 이러한데, 심한 입덧, 피로, 요통 등으로 컨디션이 많이 안 좋거나 거기에 더해 그런 컨디션으로 긴 출퇴근길까지 견뎌야 하는 임산부들의 마음은 어떨까.
시간이 흘러 임신초기를 지나 임신 중기를 보내면서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분노할 일과 더불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들도 많이 겪게 되었다. 출퇴근길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 속에 홀로 고요히 비어있던 임산부석을 마주쳤던 날들, 임산부석에 걸터앉듯 앉아있다가 저 멀리 지나가는 나를 보고 놀란 듯이 일어난 누군가의 양보를 받았던 날들, 임산부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선뜻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사람들.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최근에 내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게 언제였나 싶었다. 학창 시절엔 노인분들께 꽤 자주 자리를 양보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었다. 교대근무, 과도한 연장 근무, 직장 내 인간관계 등으로 힘들었던 직장생활을 하며 출퇴근길 지하철에 오를 때 나는 이 지하철 안에서 나보다, 아니 나만큼이라도 힘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했다. 다들 피곤하다고 해도 나만큼 한숨도 못 잤을까, 나만큼 오랜 시간 서서 일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할 처지가 못된다고 생각했다. 노인의 구부러진 허리와 무거운 짐도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나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처음엔 그렇게 나의 고단한 삶으로 인해 주변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내 삶이 고단하든 고단하지 않든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제일 힘들다는 마음가짐으로 내 삶에만 몰두한 채 지내다 보니 나에게 작은 손해라도 끼치는 모든 타인들이 싫었다. 그러니 내 삶과 아무 관련도 없는 낯선 누군가에게 굳이 내 몸의 편안함을 선뜻 포기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나에게만 몰두한 그 작은 사고의 틀 안에서 나는 점점 더 계산적이 되고 누가 나에게 작은 손해라도 끼칠까 예민해졌으며 마침내 쉽게 불행해졌다.
어떤 마음에서건 임산부석을 비워두었던 사람들, 자신의 신체의 편안함을 선뜻 포기하고 나에게 양보를 해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를 받으며 나는 마침내 나만 바라보았던 시선을 들어 주위를 바라본다. 공부를 하러 가는지 큰 책가방을 앞으로 맨 채 일반좌석에 앉아있던 학생은 내 배지를 보고 무심한 듯 일어나 여기 앉으라 한다. 무거운 짐을 메고 들고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지친 몸을 일으켜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어디론가 자리를 피한다. 피곤한 퇴근길의 아저씨도, 휴일 번화가로 향하는 지하철에 가득한 인파 속에서 이제 겨우 자리에 앉았던 아가씨도 따지고 보면 본인의 삶과 아무 상관도 없는, 임신한 나를 위해 선뜻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지친 삶 속에서 빈자리를 보고 털썩 앉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임산부석을 비워둔다.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너무 고단하다. 하지만 삶이 고단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나 포함 많은 이들이 양보와 배려의 미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마음의 여유 공간이 없어져버린 데서 오는 것 같다. 삶이 다양해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는 누군가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보다 각자 알아서 이 냉혹한 세상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내가 지치고 힘들어 갈 길을 잃었을 때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고 손 내밀어주는 일이 없었고, 그 와중에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다간 경쟁에서 밀릴 뿐이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안위에만 몰두하게 되고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임산부석에서 임산부가 배려받지 못하는 문제들, 그것뿐 아니라 대중교통 내에서 교통약자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은 조금 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겪은 것뿐만 아니라 임산부석을 둘러싼 더 심각하고 황당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개인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도 매일 임산부석을 이용해야 하는 나는 이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나의 행복한 출퇴근을 위해 마음가짐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나에게만 몰두해 있던 시선을 주위로 돌려 마음의 공간을 한 뼘 더 넓혀보기로.
저 사람은 삶이 너무 힘들어 온몸이 지쳐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별다른 힘들 것이 없더라도 이 팍팍한 세상 속에서 오래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또 다른 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아무 대가 없이 나에게 선뜻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준 사람들, 빈 임산부석을 보고 앉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마침내 그 자리를 비워둔 수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를 떠올려본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대가 없는 배려를 받았듯,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따뜻함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나의 따뜻한 마음을 선물 받은 누군가가 또 다른 낯선 누군가에게 따듯함을 선물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퍼져가는, 그 아주 작은 기적이 조금씩 퍼져나가길 바라본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조금씩 더 행복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