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아주 오랜 전 엄마를 잃었지만 그 사실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를 잃기 전 어린 시절이 떠올라 엄마를 잃은 슬픔에 괴로웠다. 꿈속의 나는 엄마가 죽기 전 엄마가 곧 없을 거란 말을 처음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어린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옷들을 마구 구겨 넣은 장롱 문을 갑자기 열어젖혀 마구잡이로 가득 찬 옷들이 쏟아지듯 슬픔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슬픔을 나는 차마 살펴볼 겨를도 내지 못하고 서둘러 욱여넣었다. 겨우 밀어 넣은 슬픔을 등지고 잠시 숨을 돌리다가 꿈에서 깼다.
다행이다, 나는 지금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나는 엄마가 있었어서.
깊은 안도감, 그리고 동시에 연민의 마음도 들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어떻게 되건 현재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은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마음 안에 얼마나 깊은 슬픔을 안고 있을지, 안쓰러웠다. 그 슬픔의 바다에 고작 살짝 발끝이 닿은 나는 이렇게도 발끝이 시린데….
꿈에서 깬 새벽녘, 나는 잔상처럼 남아있는 슬픔을 안고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았다. 임신 막달에 접어드니 자꾸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매일밤 하나하나 기억해 낼 수 없이 많은 꿈을 꿨다. 주로 학창 시절로 돌아가 시험을 앞두고 제대로 시험공부를 하지 못해 시험을 망칠까 봐 두려워하는 꿈을 많이 꾸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주로 꾸는 꿈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꿈도 꾸었다. 꿈들은 매일밤 조금씩 변주하며 반복되었고 새벽녘 잠에서 깨면 빛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한 달 뒤면 나는 엄마가 된다. 처음 세상을 마주할 때 온 세상이 되어주고, 살아가는 내내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온전한 내 편이지만, 그 거대한 존재감으로 인해 잃었을 때 거대한 슬픔을 안겨주는 사람. 너무 소중해서 평생을 노심초사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수백, 수천만 년을 걸쳐 내려온 사랑의 줄기가 내게서 내 아이에게로 이어진다. 아주 당연한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인데, 나는 조금 두렵다. 내가 그런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한 인간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지 그 시작이 되어주는, 그런 엄청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가 자꾸 생각나는 요즘이다. 나는 문득문득 두렵고 엄마가 보고 싶다. 뱃속의 아이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며 꿈틀꿈틀 온몸을 움직거리고 나도 덩달아 몸을 뒤척이며 긴긴밤을 보낸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매일밤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