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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Jul 18. 2024

오늘도 나는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배우는 인생의 진리

  4월, 봄의 한가운데, 나는 엄마가 되었다. 모리(태명)는 갑자기 나오라는 신호에 최선을 다해 출구를 향해 머리를 디밀었지만, 결국은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다. 내가 제왕절개라니. 평소 의심이 많은 나는 내가 마취된 사이 내 몸을 갈라 아이를 꺼내는 수술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 나와 아이의 몸에 어떤 위해가 가해질까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뭐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인위적으로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낸다니. 산모나 아이 모두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유도분만은 이제 중단하고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고에도 나는 어떻게든 수술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버텼던 것이다.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제왕절개는 생각보다 덜 무서웠고 마치 제왕절개가 체질이었던 사람처럼 회복이 빨랐다. 자연분만의 고통은 선불제, 제왕절개의 고통은 후불제라던데 나는 후불로 지불할 것이 별로 없다 느낄 정도였다. 게다가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 들려온 말로는 아이가 웃으며 태어났다고 했다. 비록 배냇짓이었겠지만. 배를 열고 보니 탯줄을 세 번이나 감고 있었다던데, 계속 유도분만을 시도했다가는 보지 못했을 뻔한 미소였다. 신생아 면회시간, 자연분만 산모처럼 멀쩡히 병실 복도를 걸어 웃으며 잠들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끔찍이도 제왕절개를 원치 않았던 나 자신이 무색해졌다.




  모유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식품이라길래,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절절한 부모의 마음으로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엄마가 모유수유를 하고 싶어도 출산 후 빨리 젖을 물리지 않으면 젖병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가 엄마 젖을 빨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길래 아직 아픈 배를 부여잡고 병실에서부터 수유콜을 받았다. 그런 나의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아이가 젖을 잘 물어줬고 그러다 보니 젖도 빨리 돌아 꽤 순조롭게 모유수유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의 유관은 남들보다도 유독 얇아 걸핏하면 막히기 일쑤였고 막힌 유관엔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염증이 생겼다. 와중에 아이의 입이 유독 작아 제대로 된 젖물기가 되지 않아 안 그래도 얇고 잘 막히는 유관을 더 막히게 만들었다. 반복되는 유선염의 고통은 몸과 마음을 모두 힘들게 했지만 내가 아픈 것은 어떻게든 참아내고 싶어 꾸역꾸역 모유수유를 이어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젖물기가 되지 않는 것이 반복되니 공기를 자꾸 먹어서인지 모유수유만 하는데도 아이의 배앓이가 심해져 하루에 6시간을 넘게 강성울음을 하였다. 달래지지 않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씨름하는 것도, 괴로워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도 너무 힘든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감기에 걸리게 되면서, 많은 악조건들에도 무릎 꿇지 않고 버티고 버티던 모유수유 의지가 무참히 꺾여버렸다. 마치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처럼, 고작 감기 하나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돌이켜보면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은 힘든 일 투성이었다. 수유를 할 때나 안 할 때나 계속 칼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이 있었고 아이가 아직 작고 힘이 없어 제대로 다 먹지도 않고 금방 잠들거나 젖을 문 채 몸을 배배 꼬면서 용쓰기를 하느라 내 가슴만 계속 상처 내고 제대로 먹지는 않는 것을 달래가면서 먹이느라 매번 진땀을 뺐다. 모유가 아이에게 최고의 식품이고 엄마에겐 산후회복을 돕고 유방암을 예방하며 분유값을 아낄 수 있고 젖병세척을 할 필요가 없어 아주 간편하고 좋다던데, 나는 모유수유를 할수록 모유수유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우울감이 심해지고 몸은 병들어갔으며 막힌 유선을 뚫느라 마사지 비용, 병원 진료 비용, 약값이 배는 더 들었고 한번 먹일 때 30분 이상 충분히 먹이기 위해서 하루 종일 아이랑 붙어있느라 젖병 세척을 하지 않는데도 전혀 간편하지가 않았다. 게다가 아이도 배앓이를 심하게 하여 매일 하루에 6시간 이상 울어대며 괴로워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참고 한두 달 이상 계속하다 보면 아이와 나 모두에게 좋아지는 날이 온다던데 언제 올지 모를 그날을 기다리기엔 하루가 너무 1년 같았던 것이다.


  모유수유를 끊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때만큼 괴롭지 않다. 아이는 모유를 끊고 배앓이 전용 젖병과 분유를 먹이자마자 배앓이가 바로 좋아졌다. 나는 가슴이 아프지 않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져 회복이 빨라졌고, 일단 몸이 아프지 않고 아이도 전보다 잘 먹고 잘 자니 우울감도 한결 나아졌다. 분유를 먹이며 미소를 되찾은 나와 아이를 보며, 모유수유를 꼭 해내고 싶었던 나 자신이 무색해졌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일들의 반복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내 예상대로 되는 일이 없으나, 아무리 애써도 내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그냥 속수무책으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지만, 실은 그다지 별 탈이 없고 오히려 잘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 그러니 뜻대로 하려고 노력하되 너무 고집부리지 말고 운명의 흐름이 내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면 때론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받아들일 것. 그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임을 깨닫는다. 오늘도 내 뜻대로 쉽사리 잠들지 않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받아들이는 마음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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