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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Jun 26. 2023

대중성이라는 도구

뮤지컬 레드북 후기


사실 관람한지 한 달은 더 된 작품인데 이제야 후기를 쓰게 되었다. 종강한 후, 친구들과의 약속과 자격증 공부, 그리고 현재 쓰고 있는 소설의 진도를 빼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다. 비록 좋은 평을 남길 타이밍을 놓치기는 했지만, 작품을 시청했다는 기록은 남겨두고 싶어 흐린 기억을 더듬어 본다. 


뮤지컬 < 레드북 >은 요즘, 아니 근 30년 동안 멈추지 않고 이슈가 되어 온 페미니즘에 관해 다루는 작품이다. 뮤지컬의 주요 소비자층이 20/30대 여성인 것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동시에, 여성 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대중성을 갖추고 있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선택이 극의 깊이를 떨어뜨렸다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이다. 그런 그가 소위 발랑 까졌다고들 하는 여자 주인공을 만나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다정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묵묵히 응원해 주는,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더 나아가, 그러한 여주인공이 글을 써 여성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을 변화시킨다는 결말은 너무나 이상적이라 동화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 경경일상 >의 후기를 다룬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동화와 같은 스토리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삶부터가 팍팍한데, 극을 보고 책을 읽는 잠깐조차 그러한 삶의 연장선이라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이야기를 찾지 않을 것이다. 


뮤지컬 < 레드북 >은 희망이 없는 현실에서 잠시 도피해 어린 아이처럼 꿈과 희망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향한 여지도 조금 남겨 두었다. 극의 마지막에, '19금' 소설을 쓴 여 주인공의 재판을 소설이 완결될 때까지 보류했다는 것은 즉, 현대의 기준에서는 무고한 그녀가 사회적 시선에 의해 무죄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록, 유죄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깔끔한 정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결말이, '인권운동'을 향한 극의 시선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 부분에서 만큼은 동화처럼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식의 가벼운 얼버무림이 아닌, 사회의 무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야만 하다는 역사적 책임을 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뮤지컬 < 레드북>이 대중성이란 도구를 이용해 더 폭 넓은 관객에게 페미니즘과 인권 운동의 메세지를 전달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이기 쉽지만, 그 알맹이 만큼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에 한 번 더 극을 시청할 기회가 온다면, 더 깊이 극을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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