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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Jul 01. 2023

잊혀진 서사

상견니 후기


사실 나는 중국 드라마 덕후이긴 하지만 유명하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많이 본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 위주로 작품을 시청하기 때문이다. < 상견니 >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하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볼 기회가 마땅치는 않았다. 그러다 친한 친구의 강매(?)로 1회를 틀게 되었고, 뛰어난 연출 덕에 정주행을 할 수 있었다.


< 상견니 >는 시공간을 넘어 죽은 연인을 찾아 간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드라마에 매료되게 만든 요소는 로맨스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다름아닌, 작품이 조연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극 중 여자 주인공인 황위쉬안은 1998년의 천윈루에게 빙의되어 자신의 죽은 연인과 똑같이 생긴 리쯔웨이와 만나게 된다. 대게, 이런 류의 스토리에서는 '천윈루'와 같은 캐릭터는 단편적으로 그려지거나, 도구화되기 마련이다. < 상견니 >의 경우에도 초반에는 그랬다. 황위쉬안이 그 몸에 빙의된 덕분에 외톨이에다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던 기존의 천윈루는 '황위쉬안'의 인격이 빙의된 후부터 친구도 많이 생기고,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긍정적인 변화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범죄의 표적이 되어 의식을 잃었는데, 미래에서 왔다는 인격이 자신의 몸에 침투해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놨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그녀로 하여금 과거, 즉, '황위쉬안'의 인격을 가지기 전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다. 그때는 재수 없었다고. 그때는 괴짜였다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조차 그녀가 '황위쉬안'이 아닌 '천윈루'라는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그녀를 버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기혐오에 빠진 그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선택이 궁극적으로는 '황위쉬안'의 연인이 죽게 된 과정의 시발점이 되었다.


스토리가 워낙 복잡한 편이라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오직 '주연' 그리고 '매력' 적인 인물에만 흥미를 느끼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시선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 느껴졌다. '천윈루'는 대중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잊혀진 인물이다. '황위쉬안'이라는 빛이 남기고 간 그림자. 사람들은 빛에만 집중하지만, 그림자가 없다면, 빛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결국, 매력적인 서사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주연은 '황위쉬안'이지만, 그녀가 가진 서사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천윈루'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상견니'는 단지 힐링만을 위한 가벼운 사랑 드라마는 아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건 전개와 미스터리, 그리고 묵직한 메세지를 보고 싶은 시청자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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