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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Jul 23. 2023

'역사' 라는 이름의 분류 작업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후기


한 달 내내 외국에 나가있는 바람에 또 다시 블로그 작성을 밀리고 말았다. 오늘은 외국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관람했던 공연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다름아닌, 연극 < 히스토리 보이즈 > 이다. 

표면적으로는 교육에 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 지방 세필드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 입시 준비반을 배경으로 하여, 그곳에 새로 부임하게 된 역사학 교사, 어윈은 자신과 전혀 반대되는 교육 철학을 가진 문학 교사, 헥터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어윈은 오직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반면에 헥터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위한 수업'을 가르치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갈등 구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작품을 시청하기 전 나는 어윈이 헥터의 낭만에 매료되어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류의 전개로 갈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겉으로는 엉뚱하지만 '좋은' 교사로 보이는 헥터가 알고보니 하굣길마다 학생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즐겨왔던 것이다. 사건은 교장의 입막음을 통해 입막음이 되지만, 헥터는 해임되고 학생들이 대입에 성공한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죽게 된다. 

처음에는 황당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러한 헥터와 어윈의 갈등 구조가 '역사'라는 큰 주제를 향한 비유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이 세상에 100% 좋은 사람과 100%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조차 동물 인권에는 관심이 많았다. 단지, '역사'라는 일종의 분류 작업을 통해 가치가 판단될 뿐이다. 

이와 같이, 어윈과 헥터가 어떤 사람인가, 또 어떤 교사인가에 관한 논제는 그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 

어윈은 분명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는데는 있어서 도움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대학은 인생이란 큰 길에 아주 작은 요소일 뿐이다. 나머지 요소에 있어서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대학 입시반의 많은 학생들이 어윈을 통해 어부지리로 대학에 입학했다가 방황했다. 헥터는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에게 도움이 되는 교사가 되고자 했지만,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나쁜' 선택을 했다. 물론, 피해자가 그 성추행이라는 행위를 이용하고 즐기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과연 '나쁜'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들지만, 어쨋든 법은 미성년자 성추행을 금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극 < 히스토리 보이즈 >는 관객으로 하여금, 과연 누가 '착한' 역할인지, 또는 악연인지...아니, 극의 주 논제가 무엇인지조차 그 어떤 판단도 보류하게 만든다. 새삼, 우리가 배우는 '역사' 또한 '역사' 라는 분류 작업을 거치지 않은 가장 진실한 상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분명, '역사' 만큼 멋있지도, 흥미롭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기에, 그 자체 만으로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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