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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Mar 08. 2024

시지프 신화를 읽고...


내가 실존주의와 알베르트 까뮈의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가수 이승윤을 좋아하고 나서부터이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즈음이었을 터이다. JTBC에서 하는 프로그램 < 싱어게인 >을 통해 그를 처음 접했는데, '애매한 예술가' 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포부가 소설가로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에 있던 나의 고민과 맞닿았다. 특히, 정규 1집의 타이틀 곡, < 폐허가 된다 해도 >는 기존의 철학과 자기 개발 논리에 지쳐 있던 나의 눈을 깨워 주었다. 삶에 대해 이런 저런 견해를 나누는 책들을 읽다 보면, 확대 해석을 한다거나, 무언가 '멋있는' 표현 또는 말을 쓰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너무 쉽게 정의내리려 한다거나, 가르치려 들어 재수없는(?) 마음이 들었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승윤의 가사는 비관적이고 무의미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복해야 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에 관하여 논하였다.


소멸해 버릴 진실은 거짓말인 걸까
시간은 나 역시 부숴버리겠지 결국
어차피 사라져 버린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짓말쟁이가 된대도 나는 너를 너를
서기가 영원해도 넌 마지막 너야


그런 그가 페르난두 페소아, 카뮈 등의 실존주의 철학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 이방인 >을 읽은 후에는 카뮈가 나의 최애(!) 철학가로 등극하기도 했다. < 시지프 신화 >는 카뮈의 철학 전반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워낙 어렵다는 말이 많아 미뤄두고 있었다가, 별안간, '이것도 안 읽었으면서 까뮈를 안다고 말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다.


< 시지프 신화 >를 관통하는 주제는 부조리의 추론이다. 자살! 이라는. 매체에서나 철학에서나 그 무게감 때문에 잘 논의되지 않는 금기를 첫 문장에 집어 넣으면서 기존의 형이상학을 비판한다.


나의 경우에는 < 쇼펜하우어 >를 읽고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주제였다. 만약 세상에 신이 없고, 천국과 지옥이 없고, 선과 악이 없으며...내 모든 삶과 존재가 그저 '자연'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라면...그 톱니바퀴가 현대의 생물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 불과하다면, 정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혼란 속에서, '신'의 관점에서는 흙탕물 싸움에 불과할 그 몸부림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방법이 죽음 뿐이라면, 진정 '자살'이란 이상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었다. (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었어서 다행이다...ㅋㅋ )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고 싶다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을 느낀다. < 시지프 신화 > 에서는 그러한 철학적 부조리를 과도하게 파고들거나, 회피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자살을 찬양하는 이성적 사고와 살고자 하는 본능의 충돌으로 만들어지는 사투를 삶 그 자체라고 해석한 것이다.


내게는 세기의 바람둥이, '돈 후안'을 다루는 대목이 특히 인상깊게 다가왔다.


돈 후안은 여인들을 '수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여인들을 최대한으로 상대하며 그 여자들과 더불어 삶의 기회를 남김없이 소진한다. 수집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먹고 살아갈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돈 후안은 희망의 또 다른 형태인 회한을 거부한다. 그는 초상화달을 바라보며 즐길 줄 모른다


눈코 뜰새 없이 돌아가는 한국 사회, 특히 취직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결과'를 위주의 삶을 살기 쉽다.  무엇 하나 경험을 하더라도, 이것이 추후 내가 어떠한 도움이 될지 평가하고, 판단한다. 이성을 만날 때 또한 마찬가지이다. 외모부터 학력, 직장까지.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돈 후안은 그 '결과'가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성장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삶의 무의미함을 잊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정면으로 돌파하고 대항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돈 후안은, 그리고 카뮈는 주어진 기회를 소진하며 살아가라고 말한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 그리고, 만약 그 최후가 '결과'를 위해 달려간 사람보다 비참할 지라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유' 한다는 신의 금기에 도전한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비행을 하고 있든지,

추락을 하고 있든지

공기와 저항하여 싸우는 것은 같다고...

그렇게 생각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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