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향기 Aug 09. 2021

삼례 가는 길

2021년 5월 26일 수요일


삼례 가는 날.
오늘의 목적지는 전북 완주군 삼례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났어요. 평택의 지제역에서 익산 가는 8시 01분 SRT 기차를 예약했거든요. 

지제역까지는 집 근처 오산대역에서 전철 타고 가요. 


SRT로 익산역 도착 예정시간은 8시 42분이니까 익산역에서 전라선으로 갈아탈 탑승시간이 잘 맞았어요.


익산역에서 전라선 무궁화호로 갈아타고 삼례 갈 계획인 거죠.


일하러 갈 때는 이 코스가 가장 빠른 교통편 같더라고요. 물론 기차 시간이 잘 맞아야겠죠.


익산역에서 무궁화호는 8시 58분 열차이고 삼례역에는 9시 08분 도착인데요.

익산역 다음 역이 바로 삼례역이에요. 익산역에서 10분밖에 안 걸려요. 


용산에서 출발한 이 무궁화호의 종착역은 여수 EXPO역이랍니다.


무궁화호 기차로 용산역에서 여수까지 5시간 10분 정도 걸린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용산역에서 익산역까지는 약 3시간 10분 정도 걸리고요.


익산역의 전라선 승차장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디를 가시는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면서 기차를 기다리시는데 시골에서나 느낄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었어요.


기차는 제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있어요. 저기 오는 기차예요.

정말 오랜만에 무궁화호 기차를 타보는 건데요. 몇십 년은 된 것 같아요. 젊었을 적에 타보고 지금은 환갑이라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닫게 되네요. 


무궁화호 기차 좌석에 앉으니 여행객의 기분 모드로 전환되더군요. 10분간의 짧은 여행 감회였지만 SRT 탈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역시 기차여행의 맛은 무궁화호에 있나 봐요.


무궁화호 열차 안 그 공간에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여행객들의 설렘과 사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았어요.


마음 놓고 련한 감상에 젖으려는 순간 재밌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앞쪽 좌석의 아가씨가 여행 가방을 선반 위로 들어 올리려는데 낑낑대며 힘에 부쳐 보였어요. 통로 건너편 앉아 있던 아저씨 그 모습을 보더니 아가씨에게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아가씨~!"  

"가방을 올려놓으면 내릴 때도 힘들 테니 올리지 말고 옆에 놔두는 게 좋을 겁니다~"


"아~ 네~  그렇네요! 고맙습니당-!" 아가씨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맞는 얘기 같았어요. 열차 안에는 빈자리도 많고 텅 비다시피 했거든요.  순간 어떤 젊은 청년이 쓱 다가오더니


"가방 올려드릴까요~?"


아가씨가 얼떨결에 '네~' 하는 순간

기사도 정신의 이 사나이 순식간에 가방을 번쩍 들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더라고요.


허~! 통로 옆자리에얘기해준 아저씨 괜히 머쓱했을 것 같아 그걸 보던 나도 좀 멋쩍었어요.


선반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여행 가방은 선반이 감당하기에는 큰 부피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생면부지 사람들이 힘겨워하는 이를 도와주려는 인간적인 산물 같았어요. 


그런데 노파심이 일었어요. 불안하게 올려져 있는 큰 가방이 행여나 떨어면 어떡하지....


착한 해프닝을 보는 사이 기차는 삼례역에 도착했어요. 가방을 올려준 사나이도 여기서 내리더군요.


넓디넓은 호남평야 한가운데 5월 26일 오전의 삼례역은 한산했어요.


현대식 시골역의 모습이랄까요. 삼례역을 빠져나가면서 전시된 역사 이야기가 있어 몇 장 찍어봤어요. 

조선시대 역참이 있었던 곳이라네요.


우리의 슬픈 역사인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삼례인데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가 1894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녹두장군 전봉준이 동학농민군을 재조직해서 반외세와 자주화의 기치를 든 곳이 삼례였다는 거죠. 동학 민군들의 절함이 서린 장소예요.


한 이 나라를 빼앗은 일제가 기름진 만경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에 반출하기 위한 철도를 깔았고 그 어마한 양의 쌀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양곡창고가 있던 곳이 여기에요.


정작 땅의 주인인 우리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여야만 했던 비통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죠.


그런 양곡창고 터를 문화예술로 탈바꿈시킨 삼례역 주변의 삼례문화예술촌을 이번에 구경 못하고 온 것이 내내 아쉬웠어요. 


전북하이텍고등학교(옛 삼례공고)에서 특강이 있어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다음에는 평택역에서 무궁화호로 내려갈 생각인데요. 그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번에 못 가본 삼례문화예술촌도 돌아볼 거예요.


삼례 하면 또 생각나는 게 있어요.


 년 전 전주에 강의 다녀오면서 삼례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길가에서 딸기 파는 분들이 눈에 띄길래 차를 세워 한 상자 사 갖고 온 적이 있었든요.


~! 딸기도 크고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글 쓰는 이 순간에도 때의 딸기향이 확~ 풍기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