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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26. 2021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타인의요청에 거절할 권리vs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사람

태풍으로 비가 쏟아진 주말,  기차를 탔다. 나는 기차를 탈 때면 항상 창가 자리를 이용한다. 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코레알 어플로 최소 여행 하루 전날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예약해놓은 창가 자리로 향했다. 좌석에 앉으려는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내 좌석 옆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모녀 뒤에 서 있으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제 딸이랑 같이 앉고 싶은데,  제 자리에 앉으실 수 있나요?"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좌석을 흘낏 쳐다보았다. 복도 자리였다. 나보다 몸집이 두배 정도 큰 건장한 남성이 한쪽 다리를 반대쪽 무릎 위로 올린 채로 빈 좌석에 3분의 1 가량을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창가 자리에 앉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고 예약한 좌석으로 재빨리 몸을 옮겼다. 


앉자마자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불편했다. 가방을 벽에 걸어두고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모 옆에 앉아서 가" 아이의 엄마가 말했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고 처음 보는 "이모" 옆에 쭈뼛쭈뼛하며 의자 끝에 엉덩이만 간신히 걸쳐 앉았다. 아이는 바로 건너편 복도석에 앉은 엄마를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좌석을 이런 식으로 지정해줬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아이의 엄마가 혼잣말로 불평과 원망을 매표소 직원에게 돌렸다. 


주말 기차는 주로 만석이기에 가장 가까운 양쪽의 두 복도 자리는 매표소 직원이 모녀에게 지정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좌석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투정이 나에게 향한 것 마냥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아이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치 엄마를 잃은 것 같은 불안한 표정으로 엄마손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두 사람의 떨어진 간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작은 복도에 불과하였지만, 마치 내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내 좌석에 앉았을 뿐인데 못된 심보를 가진 이모가 아이 엄마의 좌석을 빼았은 것 같았다. 나의 시선은 노트북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모든 집중은 모녀를 향했다. 아이가 엄마가 아이 쪽을 바라볼 때마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오른쪽 빰이 화끈거렸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결정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내가 그 순간 왜 관대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었다. 


늦었지만 그 순간이라도 좌석을 바꿔줄지를 고민했다. 아이의 엄마에게 의견을 물은 뒤, 사용 중인 노트북을 커버 안에 집어넣고 가방에  다시 넣은 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도 함께 챙겨 좌석을 바꾸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순간 저항감이 들었다.


이내 내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여성이 여행 전 미리 좌석을 예약해 두었으면 이런 일을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선호하는 좌석에 앉기 위해 미리 예약했을 뿐인데 죄지은 사람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미안함 감정에 의문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켜져 있는 노트북의 스크린만 응시하다 불편한 감정이 문득 "나는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뻗쳐나갔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평소 기차를 자주 이용하기에 좌석 교환을 요청받은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 좌석에 앉아서 반강제로 좌석 교환을 주문한 중년의 여성의 명령에 공손하게 복종한 적이 있다. 


입석으로 탑승한 가족 중 어린아이가 앉고 싶다고 조르는 모습을 보고 자진해서 내 좌석을 양보해 준 경험이 떠올랐다. 


다만 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한결같이 좋은 사람의 입장을 유지하는 건 아니었다. 


기차에 앉아있는 한 시간 동안, 엄마와 나란히 앉지 못해 불안해하는 아이 바로 옆에서 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공존하였다. 그날의 나는 그 모녀에게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편안함을 위해 두 사람의 요청을 거절한 매몰차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비쳤을 수 있다.


개인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모녀에게 좌석을 양보해줬어야 하는 걸까? 

부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나는 왜 피의자 같은 심리를 경험하는 걸까? 

비가 오지 않았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어린 여자 아이의 엄마 잃은 듯한 불안한 표정과 함께 기차에서 내린 후에도 오랜 시간 머릿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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