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는 무례한 사람에게 집중할 만큼 하찮지 않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누구에게나 무례한 사람을 한번쯤 마주치는 경험을 한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살다 보면 감기처럼 한 번씩 무례한 사람이 인생에서 문을 두드리곤 한다. 평소 타인에게 배려심이 좋고, 예민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무례함에 더욱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코로나 시대, 나름 조심한다고 외출도 자제하고 잠깐이라도 외출하게 되면 손도 비누로 꼼꼼히 씻고 외출복도 따로 정리했는데 얼마 전 감기에 걸렸다. 살면서 한 번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딴섬에 고립되어 혼자만 생활한다면 모르겠지만, 감기는 우리가 타인과 함께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무례한 사람을 피하는 것은 감기를 피하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무례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가 아닌,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내가 하는 번역일은 서비스직이기에 일을 하다 보면 무례한 고객을 마주칠 때가 있다. 각각의 서비스에는 정해둔 규칙과 지침이 있듯이 나름 5년 이상 실행해온 규칙이 있는데, 해당 고객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써댔다. 몇 번이나 규정을 설명드리고, 표기된 증거 내용을 들이밀어도 생떼는 중단되지 않았다.
그녀의 항의성 메일은 모호했고, 무례했고, 막무가내였다. 순간 키보드를 치는 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설명을 수차례 반복해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막무가내로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조르는 그녀의 메일 속 단어는 무례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한 시간을 한 사람에게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다가 일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그녀가 원하는 대로 모두 양보해줬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가진 후에도 감사하다는 말 대신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항의성 짙은 답장을 보냈다. 사실 과거의 나였더라면 약관을 들먹이며 원칙대로 하였을 것이다. 5년 동안 비슷한 경험으로 내공을 쌓아보니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이익이란 사실을 경험했다. 금전적으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마음의 짐은 금전적인 손해보다 결국 더 큰 손해를 남기곤 했다. 한 명의 막무가내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일치감치 양보해주고 남은 시간은 다른 고객을 더 기쁘게 하는 것에 쓰는 것이 결국에는 더 큰 이득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받은 뒤에도 일관적으로 무례함을 유지했다. 그녀가 남긴 무례한 표현이, 이기적인 주장이, 막무가내 생떼가 머릿속을 흠뻑 적신 뒤에야 내가 또 무례한 사람에게 에너지를 낭비하였구나를 알아차렸다.
그녀를 상대하고 난 뒤, 머릿속이 불쾌감으로 꽉 차 더 이상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산책 겸 기분전환을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단것이라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하나 골라서 계산대로 향했다. 30-40대 정도의 여성이 무표정으로 계산을 도왔다. 그녀의 표정에, 물건을 건네는 손짓에, 나가는 순간까지 인사 한마디 없는 불친절함을 느끼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배려있는 행동은 바보 같은 행동인가?'
무례한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내 안의 친절함이 힘을 잃은 느낌이다. 무례함이란 거센 공격을 받고 나면, 내 안의 배려심이 기가 한푹 꺾인 느낌이 든다.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된 채로 보낸 뒤, 다음 날 기분전환 겸 시간을 내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카페의 직원이 웃으며 주문을 받았고 마스크 뒤에 숨겨졌지만 느껴지는 미소에 전날 타인에게 받은 무례함으로 인한 상처가 희미하게라도 보듬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의 미소에 내 안에 고개 숙인 배려심이 다시 생기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러 차례 하였다. 사실 이에 대한 결론은 어떻게 감기에 걸리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가처럼 막연하다. 여러 차례 감기에 걸려 면역력이 생기는 것처럼, 무례한 사람을 만나서 내 안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감기에 걸릴 때마다 고열 및 각종 증상에 시달리는 것처럼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의 기복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다만 감기에 걸렸을 때 우리는 이내 감기에 낫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무례한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불쾌감도 금세 지나갈 것이란 것을 염두에 둔다면 내 안의 따뜻함과 배려심에 큰 상처를 남기는 빈도는 줄어든다.
무례함보다는 친절함이, 이기심보다는 배려가 언제나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존경심은 상대보다 나의 하루를 더 행복하게 해 준다. 무례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다시 돌아오질 않은 소중한 나의 하루를 위해서 무례함을 무시할 수 있는 면역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하루는 무례한 사람에게 집중해서 기분을 좌지우지당해야 할 만큼 하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