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서평
사유와 ‘행위’의 손실이 발생하는 현대에 인간이 영속적인 세계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타인의 지속적인 현존을 바탕으로 삶의 필연성에서 벗어난 공론 영역의 건설임을 설파하는 아렌트는 본질이 결여된 현대의 공론 영역에 비판을 가한다. <인간의 조건>에서 공론 영역은 정치의 장으로, 역사적 흐름 속 그 정의가 변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아렌트는 사적 영역에 속하는 ‘노동’과 ‘작업’의 구분 논의에서 시작하여 인간의 배타적 특권인 정치적 삶 그 자체, 즉 ‘행위’ 의 실천적 차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담론을 확장하고 역동적인 구조 변동 사이에서도 궁극적으로 공론 영역이 획득해야 할 특성을 서술한다. 즉, ‘행위’ 가 전제되어야 하는 공론 영역이 근대 사회의 출현과 함께 점진적으로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며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공론 영역 건설의 필요를 역설하는 것이다.
‘노동’은 본래 생물학적 삶에서의 자연적인 즐거움과 생명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순환에 종속되어 있어 영속성, 세계성에 속하지 않음에도 오늘날 보편적 공동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근대가 발전하고 인간 활동 중에서 가장 사적이었던 노동이 공적으로 변해 자신의 공론 영역을 확립한 사회가 발생” (한나 아렌트, 2019, 202p) 함과 동시에 노동은 공론 영역으로의 진입에 성공한 것인데, 이는 노동과 행위가 역전되며 생긴 왜곡 현상이다.
모든 인간을 노동하는 동물로 정의한 마르크스는 노동으로 인해 비세계성에 속한 인간이 필연성을 극복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 활동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수적이라 보았다. 그러나 노동 해방으로부터 시작된 공론 영역의 소멸을 예견하는 것을 넘어 소원하기까지 했던 마르크스에 대해 아렌트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노동의 해방은 인간의 활동적 삶으로부터도 박탈되는 것이라 규정한다.
결국 노동하는 동물과 노동은 공론영역을 구축할 수 없는 반(反)정치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이로부터의 해방은 활동적 삶의 범주를 파괴하는 것으로 공론영역의 건설 가능성 또한 철폐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호모파베르는 가치를 지닌 생산물을 창조하는 ‘작업’의 주체로서 노동하는 동물과 구분된다. 고립된 사적 영역에서 사적 이용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던 호모파베르의 작업은 근대에 이르러 노동의 차원으로 전락하였고 사용물이 아닌 상품을 생산하며 교환시장 구축을 통해 공적 영역으로 부상한다.
호모파베르는 오로지 이곳에서만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비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며 공적 영역으로의 진입은 단순히 사적 활동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업으로 생성된 객관적 세계는 지속성을 산출하여 인간의 말과 행위를 사물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 작업 역시 공론 영역 본질의 기반이 될 가능성을 축적하고 있음을 뜻하며, 객관적 세계의 구성은 인간 행위를 현상 공간에 실체화시켜 영속성을 부여할 수 있음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작업이 생성하는 인공세계는 타인과 주변 세계의 실재성을 확립하여 행위하고 말하는 인간이 구성하는 공론 영역의 가시성을 뚜렷하게 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정의한 공론 영역은 “첫째로 누구나 공중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고 따라서 가능한 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지고”, “둘째로 세계 자체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세계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이고 우리의 사적 소유지와는 구별”(한나 아렌트, 2019, 132-135p) 되는 것이다. 즉, 이는 정치적 삶을 이룩하는 ‘행위’의 정체성이 온전하게 발현되는 공간이며, 구성원의 동질성이 아닌 다수성에 의해 보장된다.
행위는 말을 수반할 때에 주체성을 띠며 타인과 함께할 때에 활성화되는 것이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공론 영역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자신의 탁월성을 드러내는데, 종합하자면 행위는 타인과의 교감 속에서 확정적인 유효성을 획득하여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한다. 다만, 행위는 예측불가능성, 환원불가능성을 수반하는데 아렌트는 이러한 행위의 연약성을 용서하는 힘과 약속의 힘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처럼 이상적인 공론 영역에 대한 구체적인 전언을 서술하는 가운데 아렌트의 행위 개념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현대에는 노동과 사유가 절대시되어 공적 삶의 기반이 되는 말과 행위가 외부 세계에 드러나기 어렵다. 공적인 것과 구별되어야 하는 노동, 작업이라는 사적 영역에 공론 영역이 잠식되며 본질이 훼손된 것이다. 아렌트는 공론 영역의 몰락으로 인해, 행위를 촉발시키는 창발성으로부터 멀어진 현대인은 공동감각 또한 잃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세계소외가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이로써 온전하게 사적인 것은 진정한 인간의 활동적 삶으로부터 박탈되어 필연적으로 고립을 생성하며, 반대로 박탈성의 회복은 타인과의 공존 그리고 세계의 보존을 이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공론 영역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적극적인 사유와 행위를 본래 의미 회복의 자양분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사회의 지배력을 극복하여 응축된 종합체로서의 노동, 작업, 행위의 역할에 대한 객관적 정의를 토대로 결국 공론 영역의 본질적 정체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인간의 정치적 삶 실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