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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Feb 19. 2024

합격과 불합격, 그 간극 사이





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입) 시험(시)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문학공모전이 바로 그 시험이다.

내가 몸담았던 언론계도 고시에 가까운 시험을 쳐 사람을 뽑고, '기수 문화'가 강력한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따지고 보면 참 웃긴 일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상식 문제 풀고 논술 시험 쳐서 어느 날 갑자기 중앙 일간지나 방송사의 기자가 된다. 그러고는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든가 한국 사회가 이러면 안 된다든가 하는 글을 대단한 전문가마냥 쓰기 시작한다. 그걸 수백만 명이 보고 읽는다.
- 장강명 <시험,합계,계급> 중에서




"우리도 입용고사에 합격하지 않았다면 서울로 올라가야 했을 걸요."

나는 우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누린 성공보다는 그저 운 좋은 사람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그랬을까요... 나는 그 복잡한 서울에서는 절대로 못 살 거예요."


동료 교사의 대답은 긴가민가하는 얼버무림이었지만,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 시절 내 기억을 되돌려 보면, 나는 임용에 합격할 자신도 없었고, 서울에 올라가서 일자리를 구할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노량진 고시원 쪽방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내 생애 최고로 열심히 공부한 시절이었기는 했다.


하지만 그저 '열심히'만으로 내 직업 성취를 말하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다. 실력 50, 운 50. 나는 이미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교 공부의 한계를 느끼며 패배의식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IMF구제금융 사태가 터졌고 취업 길은 막막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사람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이는 이유를 그땐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모여 살아서 치러야할 댓가가 크지만, 구석구석 일할 기회는 많다는 것을 몰랐다. 다만 그땐 경쟁의 한 가운데서 승리할 자신감이 바닥인 상태였다. 내가 임용에 실패했다면 나는 서울로 올라갔을까? 지금은 그래야 한다인데, 그땐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교사 임용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아내는 서울에서 영화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방이긴 하지만 국가 공채 시험에 합격했기에 굳이 서울 올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린 운 좋은 기득권층이다. 임용시험 합격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한 우리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선택받은 게 오롯이 자신만의 노력일까. 선발 공채시험이 좋은 교사를 뽑는 기준이었을까.


경쟁의 논리는 승자들에게는 언제나 옳다. 학교가 살벌한 경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가고 있는 것은 패배자들의 아픔을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1의 승자에 99의 패자의 불균형한 구조에 있다. 나는 패배자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데 한참이 걸렸다. 어쩌면 그런 패배의식이 연민과 공감에 민감한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도 모른다.




건강하다가 신체적 약자가 되면서 시스템의 배제를 맛보았고, 교사의 시절 마무리를 생각하고 있다. 학창시절 꿈꿨던 작가 세계의 바닥부터 또다른 시작을 계획하고 있다.


영원한 강자나 기득은 없다는 것.

자신 또한 상대적 약자집단에 소속된다는 인식을 놓치지 않을 것.

강자는 대다수의 약자가 특정 집단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강자의 권력을 획득하는데 골몰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누리는 집착을 놓지 못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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