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홀랜드 오퍼스>
열정으로 젖은 세월의 무게는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작곡가가 꿈이었던 ‘글렌 홀랜드’가 결혼 후 호구지책으로 케네디 고등학교의 음악 교사가 되었다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평생을 교직에 바치면서 보여준 음악에 대한 열정, 아이들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평범한 교사일 수 있지만 그에게서 남다른 울림이 전해오는 것은, 오랜 세월을 적신 그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의 무게가 학생들의 삶을 바로 세우는 균형추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장한 뒤 자신들은 글렌 홀랜드가 작곡한 교향곡의 음표와 멜로디라고 주장할 만큼 학생들 삶의 행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입시 성적에 급급하여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린 우리 현실을 돌아볼 때 글렌 홀랜드 같은 선생님이 어두운 뱃길의 등대처럼 느껴진다.
출근 첫날부터 길을 헤매고, 수업 끝나면 바로 귀가하던 글렌 홀드는 교장 선생님 제이콥으로부터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는 훈계를 듣는다. 처음 몇 년만 교사 생활하고 작곡가의 길을 가겠다는 그의 계획은 타이트한 학교생활로 인해 곧 틀어지고 만다.
학생들은 로큰롤을 좋아하나 클래식 음악에는 관심도 없고 악기 연주는 형편이 없다. 오케스트라 합주는 불협화음으로 소음에 가깝다. 글렌은 크게 낙담하여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그때 여학생 거츄드 랭이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는다고 울면서 악기 연주를 포기하려 한다. 글렌은 거츄드에게 연민을 느껴 직접 클라리넷 연주를 지도한다.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눈을 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몸에서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노을빛 머리칼을 떠올리도록 한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에 따라 악보 없이 직접 연주하라고 한다. 거츄드는 편안한 마음으로 몸에서 느끼는 감정을 점차 악기에 실어 연주를 이어간다. 악보를 의식하지 않으니 부담을 덜 느껴 감정표현이 자연스럽고 즐거워진다. 글렌은 거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야. 악보만 연주하려 했으니까….
악보가 음악의 전부는 아니야.”
“바로 그거야 연주란 즐거워야 하는 거야. 감정이 있어야 감동을 주지.
그건 악보가 하는 게 아냐. 악보는 배우면 되지만 감정은 배우는 게 아니야.
잘 할 수 있는데 스스로를 못 믿기 때문에 그래.”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열정을 다해 지도한 결과 거츄드의 연주 실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진다. 결국 거츄드 랭은 1965년 졸업식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클라리넷 연주자로서 많은 청중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왼발 딛고, 다음에 오른발 디뎌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걷는 사람은 없다. 그냥 걷는다.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발을 떼면 우리 몸이 알아서 걷는다. 즐거움은 배우는 것이 아니다. 누리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가슴이 뛰고, 눈이 빛나는 것이다. 우리는 악보 없이 걷는다.
즐거워짐을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스스로 즐거움은 천국에서 새어 나온 신의 숨결이다. 숨결에 무슨 생각이 필요한가? 그냥 즐거우면 된다. 삶은 즐거워야 한다. 행복에 성적표가 필수인가? 성적표는 획득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주체이다. 주체는 존중을 원한다. 집착이 아니라 존중받을 때 주체는 손을 내민다.
교장 선생님이 글렌의 교습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교장 선생님, 전 음악을 가르칠 뿐입니다. 베토벤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록큰롤까지 음악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면 가리지 않을 겁니다”
고상한 클래식만 고집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사랑은 존중이고 배려이다. 글렌은 클래식에 관심 없는 학생들을 위해 로큰롤을 연주하면서 클래식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집착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이 음악에 대한 존중이고 사랑이다. 글렌은 단순한 음악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고 음악을 사랑하는 방향을 찾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된다. 글렌의 말대로 음악은 즐거워야 한다.
체육 선생 빌 마이스터는 밴드부의 행진 연습을 해결하는 조건으로 루 러스라는 학생을 밴드부에 가입시겨 악기를 지도하도록 글렌에게 부탁한다. 글렌은 러스의 머리에 헬멧을 씌워 두드리는 등 갖은 방법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리듬을 익히게 한다. 오랜 연습 끝에 러스는 로큰롤 음악에 따라 흥겹게 춤을 추며 발로 박자를 맞추게 된다. 박자를 찾은 러스는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아 축제 때 시가행진에 참여한다. 글렌 자신도 점차 교사로서의 의식에 변화가 생기면서 아이들 지도에 점점 열정을 갖게 된다.
교만한 학생 스테들러와 함께 루 러스의 장례식 참가하는 장면은 교사로서 글렌의 면모를 보여준다.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직접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청각장애자인 아들 콜에 대한 아픔과 번민을 가슴에 안고 아내 아이리스와 벌이는 갈등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방식과 애착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절망과 아픔에 달구어진 그의 영혼은 더욱 음악과 학생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승화된다.
케네디 고등학교의 졸업식 뮤지컬 공연을 지도하면서 글렌은 여주인공 역을 맡은 로위나 모겐이라는 여학생의 숨어있던 재능을 일깨워 준다.
“네 생각에 이 여인의 감정이 어떨까?”
“모르겠어요.”
“아니, 넌 알고 있어. 그걸 표현 못하는거야. 이 노래는 간절한 거야, 모겐.
이 여인은 차가운 세상에 혼자 있어. 누군가가 따뜻하게 해주고, 관심어린 한마디를 해주길 바라면서 말이야.
말하자면, 사랑이 필요한 거야. 그 느낌을 잡아야 해.”
로위나가 뉴욕 무대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자 글렌은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런 말 하면 안되는 거지만, 너에겐 재능이 있어.
네 소망이 간절하다면 누가 뭐라든, 뉴욕에 가서 노래를 하라구….”
우연히 글렌의 작곡 내용을 본 로위나는 단번에 곡을 알아보고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서로의 재능을 눈치챈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글렌은 로위나에게 영감을 받아 ‘로위나의 테마’라는 곡을 작곡한다. 달과 지구 사이 중력에 의한 밀물 썰물처럼, 인연의 파장은 서로 삶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 남녀 사이의 근원적인 끌림은 증폭기처럼 작용한다. 설레는 만큼 두렵기도 하다.
토요일 공연에서 ‘로위나의 테마’ 곡이 북유럽의 신화에 따온 것이 아니라 졸업생 로위나를 위한 것을 알게 된 아이리스는 묘한 소외감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결국 로위나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가창력이 돋보이면서 졸업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둔다. 공연을 마치고 로위나는 글렌과 함께 뉴욕으로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언뜻 로맨틱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글렌은 옛친구에게 로위나를 부탁하며 그녀를 보낸다. 이 영화의 양념이다.
“같이 가실 줄 알았는데요”
“이게 최선의 길이야.”
로위나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그는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깊은 포옹과 키스를 나눈다. 서로 말없이 한때의 해프닝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는 아이리스와 글렌의 절제력이 아름답다.
중간중간 TV 뉴스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베트남 전쟁 반전 시위,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 히피 문화, 68운동, 정치인의 부침(浮沈)은 그 시대의 혼란과 성장, 변화를 보여준다. 존 레논의 '이매진'이 흘러나오고 그의 피살 소식은 글렌에게도 충격을 준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아버지처럼 사랑과 열정으로 지도했지만 글렌은 정작 아들 콜에게 다소 소홀했다. 청각장애인이라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리스를 통해 아들 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글렌은 음악회에서 조명의 강약으로 음악이 표현되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존 레논의 노래를 수어(手語)와 함께 직접 불러 아들에게 바친다.
백발이 성성해한 글렌, 새로 교장이 된 월터로부터 예산 감측에 따라 음악과목이 폐지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글렌은 이사회에서 이렇게 외친다.
“예술이 없는 읽고 쓰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음 세대에게 사고와 창조의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게 자네들 임무야. 자네들의 최선은 부족해.”
글렌을 위한 서프라이즈 환송식에서 주지사가 된 거츄드 랭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글렌의 작품인 아메리칸 교향곡의 지휘를 부탁한다.
“홀랜드 선생님은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모두다 훌륭이 성장했지요. 우리가 선생님의 교향곡입니다.
우리가 작품의 멜로디이자 음표이자 음악인 것입니다.”
글렌, 거츄드 랭 주지사, 아이리스 모두 감격에 겨워 목이 메인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 위의 커튼이 걷히면서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 준비를 하고 있다. 거츄드 주지사는 65년 졸업생 자리로 가서 클리리넷을 집어 든다. 글렌은 잠시 감정을 추스르고 힘차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아이리스, 콜, 동료 교사 모두 숨을 멈춘 채 글렌이 지휘하는 아메리칸 교향곡을 감상한다. 잠시 뒤 연주가 끝나고 기립 박수 속에 글렌은 감격스럽게 지휘봉을 들고 있다.
열정에 젖은 세월의 무게는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많은 학생들의 삶을 바로 세웠다. 글렌 홀랜드는 흔히 말하는 출세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높은 지위에 있지도 않으며 크게 돈을 벌거나 성공한 작품으로 이름을 날린 유명 인사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한 인간의 완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오로지 그 열정으로 아이들을 지도해왔다. 그의 영향으로 학생들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아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오늘날 글렌 홀랜드를 사무치도록 그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개봉1996.03.23.
등급전체 관람가
장르드라마
국가미국
러닝타임143분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