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함께하지 않은 자리에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

영화 - <디센던트>

by 낭만천사 유광영

추억이 함께하지 않은 자리에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


나름 성공한 변호사 맷은 평소 가족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일에 묻혀 살고 있다. 보트를 타다 부상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한 아내 엘리자벳 곁을 23일째 지키며, 앞으로는 가정에 보다 충실한 진실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동안 가정에 소홀한 관계로 딸 둘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행동하여 선생님과 학부모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 6일 안에 고조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문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같이 의논할 아내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그는 아내가 깨어나면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땅을 팔고 사무실을 닫은 뒤 아내가 원하는 큰 보트와 프랑스의 별장을 사고, 단둘이 세계여행을 할 계획이다. 다시 신혼 때처럼 가까워질 것을 기대한다. 이렇게 희망에 부풀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을 때, 엘리자벳의 주치의는 그녀가 이미 뇌사 상태이고 생명유지 장치만 떼어내면 곧 사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맷은 갑자기 앞이 멍해진다.


맷은 조상이 물려준 부동산에 손대지 않고 변호사 수입으로 생활했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면 최대한 성실했다. 그러나 계산할 수 있는 성실함이 관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관심과 배려가 없는 성실함은 비즈니스와 같다. 거래가 끝나면 관계도 끝난다. 그러나 가족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관심과 배려는 계산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의미 있는 추억으로 자리 잡으려면 관심이란 방부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습한 여름에 곰팡이 핀 식빵처럼 곧 기억의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것이다. 관심과 추억을 공유하지 않는 자리에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 오늘 마주한 사람과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관심과 배려를 보여라. 먼 훗날 회상하며 얼굴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아내가 혼수상태에 있는 동안 딸을 통해서 알아낸 뜻밖의 사실은 아내의 불륜이었다. 아내는 늘 외로워했고, 맷과는 이혼하려 했었다는 친구의 말에 맷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자괴감이 들었다. 엘리자베스의 불륜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맷은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가족과 소통하지 않았는지 깨닫는다. 자기만 몰랐던 일들이 의외로 많았다. 서로의 관심이 어긋나면서 딸들과도 심각하게 충돌했다.


엘리자베스의 회생 불가능이 의학적으로 확정됨에 따라 죽음에 대비해 맷은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고 두 딸도 그 일에 동행한다. 며칠간 함께 하는 동안 맷과 두 딸은 가족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맷은 죽어가는 아내 엘리자벳의 마음을 헤아려 모든 가족, 친구들과 심지어 그녀의 불륜 상대남인 브라이언 스피어에게까지 작별인사를 하도록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보여준 큰딸 알렉스의 성숙한 행동에는 엘리자벳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불륜 상대인 브라이언 앞에서 그의 아내 줄리의 입술에 키스하는 맷에게서는 씁쓸한 유머가 느껴진다. 브라이언의 원죄를 사하는 세례의식이다.


조상에 대한 관심은 후손(descendant)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연결하는 끄나풀이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에서 바라본 시선으로 행동하게 한다. 맷은 바쁜 비즈니스로 가족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댓가를 크게 치루었다.


늦었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달은 맷은 반대를 무릅쓰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을 팔지 않기로 한다. 그럼으로써 하와이 공주 후손(descendant)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유지하려 한다. 맷은 맨발로 서서 그 땅을 보호할 것을 가문의 친척 모두에게 선언하고 매각 결정에 서명하지 않는다.


“이상해요, 너무나.

그 땅을 얻으려고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여기 서명하면, 우리가 여태 보호해온 걸 날리는 거예요.

우린 너무 망가졌어요. 우린 하와이 사람이에요.

여긴 우리 땅이에요.”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은 서로를 같은 생태계에 머무르게 하는 중력작용이다. 그들과의 기억이 곰팡이 핀 식빵처럼 버려지지 않으려면 공동체 의식이라는 방부제가 필요하다. 관심과 추억을 공유하지 않는 자리에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엘리자베스의 불륜과 죽음으로 인해 맷은 딸 알렉스, 스코티와의 관계가 좋아지고 가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되찾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사람은 화해했다. 그는 죽어가는 아내 엘리자벳에게 입맞춤으로 작별 인사를 고한다. 용서와 화해로 떠나보내는 순간 눈물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린다.


“잘 가 엘리자벳.

잘 가, 내사랑, 내 친구, 내 고통, 내 기쁨.

굿바이, 굿바이”


맷은 두 딸과 함께 엘리자벳의 유골을 호놀롤루 앞바다에 뿌리고 각자의 꽃목걸이를 띄워 보낸다. 집에 돌아온 맷은 소파에 기대어 두 딸과 함께 담요를 두르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평화롭게 T.V.를 본다. 친밀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다. 일찍 그랬다면 아내의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


삶에서 보다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인가?

큰 땅을 팔아서 목돈을 만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돈은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가?


화려한 생활, 풍족한 살림이라 하더라도 관심과 추억이 함께하지 않은 자리에 행복은 머물지 않는다. 사랑, 욕망, 비즈니스의 성공, 죽음, 이별, 가족, 친구, 우정,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 등의 키워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다. 하와이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눈이 즐거워짐은 이 영화의 덤이다.



개봉 : 2012.02.16.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15분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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