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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이 Jun 29. 2022

안녕,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5

5. 기계 벌레를 만드는 고양이들


아쉽지만 샴 엄마의 발표를 끝으로 전국 행복 자랑 대회 1부가 끝났다. 

내일 또 전국 행복 자랑 대회 2부가 시작된다고 했다. 

전국 행복 자랑 대회는 굉장히 있기 있는 대회라 이렇게 1부, 2부로 나눠서 개최되는 모양이었다. 


축제가 끝나자 고양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광장을 빠져나갔다. 

때마침 할머니와 손자 고양이 일행이 나비와 희나의 앞을 지나갔다.

할머니가 손자 고양이에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행복했던 기억을 추억할 수 있어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고양이들이니. 우리는 늘 이렇게 기억을 나누지. 우리의 기억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걸, 그리고 여전히 그 기억으로 행복하다는 걸 이 대회를 통해 깨닫게 되는 거야.


나비와 희나는 할머니 고양이의 이야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비와 희나는 손을 잡고 광장을 나가며 함께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시간이 지났다고 행복한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그래. 영원히 우리의 곁에 있는 거야. 행복 자랑 대회를 구경하길 정말 잘했어.


나비와 희나는 뒤이어 둘만의 즐거운 기억들을 얘기했다.

 둘 사이에 즐거운 기억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다. 

희나가 베개와 담요를 모아 나비만의 멋진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이야기나, 나비가 희나를 괴롭히던 모기를 한 밤에 다섯 마리나 잡은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둘은 즐거운 추억 얘기를 하며 광장 밖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걸었다.


걷고, 걷다보니 나비와 희나는 어느새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숲 속이라고 해도 길이 잘 되어 있어서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찌르르, 찌르르. 어디서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나비는 풀벌레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했다. 

한참 집중해서 벌레 소리를 듣던 나비는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데?


나비가 작게 혼잣말을 했다. 나비의 혼잣말에 희나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이상한데?”


-음.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풀벌레 소리가 이상해. 


나비의 말에 희나도 나무들 사이로 귀를 기울였다. 

찌르르, 찌르르. 하지만 희나는 아무리 귀 기울여 봐도 뭐가 이상한지 알 수 없었다. 

희나는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기로 마음먹은 그 때였다. 갑자기 나뭇잎 사이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찌르르! 찌르르! 


그건 손가락 세 개를 합쳐놓은 정도 크기의 커다란 벌레였다. 

평범한 벌레 같지 않게 무지개 색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희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벌레 때문에 깜짝 놀랐다.


“꺄악!”


희나가 비명을 지르자 나비가 번개처럼 나섰다.


-야옹!


커다란 기합소리와 함께 나비가 희나의 앞으로 번쩍 뛰어올랐다. 

나비의 앞발질 한 번에 벌레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희나야! 괜찮아?


벌레를 해치운 나비는 얼른 희나에게로 달려갔다. 희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갑자기 튀어나와서 조금 놀랐을 뿐이야.”


-숲 속이니까 아무래도 벌레가 좀 있나봐.


희나는 나비의 손을 잡고 주춤주춤 바닥에 떨어진 벌레 쪽으로 다가갔다. 

윙, 윙.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벌레가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희나는 그 소리에 잠깐 몸을 뒤로 물렸다가 다시 벌레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벌레의 몸통에서 조그만 나사 같은 게 보였다. 


“이게 뭐지?”


희나는 바닥에 떨어진 벌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나무 사이에서 또 다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잠깐! 잠깐만!


나비와 희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나비와 희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제발 그 벌레를 부수지 말아줘! 23번째 실험작이란 말이야!


“23번째 실험작?”


나비와 희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의 말에 다시 한 번 벌레를 내려다봤다. 

그랬더니 이번엔 벌레의 안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태엽과 쇠 부품들이 보였다. 

힐끔 봤을 땐 눈치 채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설마 이거 기계인 거야?


나비가 눈을 크게 놀라서 물어봤다.

 그도 그럴게, 나비가 벌레를 손으로 내리쳐 잡기까지 했어도, 그게 기계인 건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울음소리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는데 설마 기계였을 줄이야. 

나비의 말에 줄무늬 고양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이건 나와 내 친구들이 만든 벌레 기계 23탄이야. 

비록 내구성이 약해서 주먹 한 번에 망가지긴 했지만. 그나저나 어땠어? 진짜 벌레 같았니?

나비와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사를 발견하기 전까지, 영락없이 진짜 벌레인줄만 알았다.


“응. 난 진짜 벌레인줄만 알았어.”


-나는 벌레모양 장난감이 몇 개 있었는데,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데.


그 대답에 줄무늬 고양이가 활짝 웃었다.


-정말? 그렇게 말해주다니 기쁘다. 괜찮으면 우리 팀원들을 만나고 가지 않을래?


줄무늬 고양이의 권유에 나비와 희나가 잠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비와 희나는 금세 결정을 내렸다.

 뭐 어때? 이렇게 멋진 기계 벌레를 만든 고양이들을 만난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 같이 가자.


“재미있을 것 같다.”


나비와 희나가 그러겠노라 대답하자 줄무늬 고양이는 몹시 기뻐했다. 


-정말? 우리 연구소에 손님이 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팀원들도 다들 기뻐할 거야.


줄무늬 고양이는 나비와 희나를 숲속으로 안내했다. 

어떤 재미있는 친구들이 나비와 희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비와 희나는 기대감에 차서 줄무늬 고양이를 따라갔다.     


줄무늬 고양이의 연구소는 아주 깊은 숲속에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나비와 희나, 그리고 줄무늬 고양이는 넓은 공터에 다다랐다. 

키 큰 나무들이 공터를 동그랗게 둘러싸서, 안으로 들어오기 전엔 이런 공터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터 한 가운데엔 작은 집이 있었다. 

빨간 지붕의 허름한 집이었는데, 문 앞에는 집만큼이나 작은 팻말이 하나 서 있었다.


「생명을 소중히! 진짜 같은 기계 동물 연구소」


나비와 희나는 줄무늬 고양이를 따라 기계 동물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와. 정말 대단하다!”


연구소에 들어간 희나가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눈앞의 광경이 정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조그만 연구소 이곳저곳에 고양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탕탕 탕탕 뭔가를 못질 하고 있는 고양이도 있었고, 쓱쓱쓱쓱 벌레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양이도 있었고, 치익치익 무언가 납땜질하는 고양이도 있었다. 

모두들 자기 일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었다. 


-다들 뭘 만드는 거야?


나비가 일하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나비와 희나는 의아해하면서 다가가 고양이들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저기. 내 말 안 들려?


고양이들은 일에 집중하느라 나비와 희나가 온 것도 몰랐던 모양이었다. 

어깨를 건드리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뒤집어졌다.


-아이고, 깜짝이야!


-도대체 누구야? 납땜질할 때 놀래면 안되는 거 몰라? 


-잠깐, 손님이야! 손님이 왔어!


고양이들이 나비와 희나를 발견하고 아까보다도 더 깜짝 놀랐다. 

모두들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당황하면서도 기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고. 손님이 올 줄이야. 도대체 어떻게 온 거야? 


-여기 좀 앉아봐. 음료수를 가져다줄게.


-있잖아. 음료수 줄 테니까, 마시고 우리 발명품 좀 봐주지 않을래?


고양이들은 나비와 희나를 귀빈 대접 해주었다. 

어디선가 푹신한 소파를 지고 와서 거기에다가 앉혀주었고, 맛있는 우유도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냥 선의로만 베푸는 친절은 아닌 것 같았다. 다들 슬금슬금 자기 작업물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나비와 희나가 작업물을 보고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어휴. 다들 그러지 좀 마! 손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잖아.


회색 줄무늬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을 말렸다. 

줄무늬 고양이의 호통에 다른 고양이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고양이들이 물러나자, 줄무늬 고양이가 나비와 희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부담스러웠지? 다들 자기 작업물을 보여주고 싶어 하거든. 연구소가 숲속에 있다 보니 연구원이 아닌 다른 고양이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


희나는 연구소 고양이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희나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칭찬을 해주면 기분이 좋고 설레곤 했다. 

고양이들도 분명 같은 마음일 터였다. 칭찬을 들으면 누구나 기분이 좋았다. 

열심히 만든 작업품이라면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 

그 마음을 이해하는 희나는 고양이들의 작업물을 진심으로 칭찬하기 시작했다.


“있잖아. 오는 길에 너희들의 발명품 기계 벌레 23탄을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 나는 깜빡 진짜 벌레인줄 알고 속았지 뭐야.”


-뭐? 정말이야? 기계 벌레 23탄을 봤다고?


-정말 진짜 벌레 같았니? 어땠어? 보니까 같이 놀고 싶었니?


희나의 말에 고양이들이 희나 쪽으로 고개를 쑥쑥 들이밀기 시작했다. 

다들 기계 벌레 23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고양이들이 너무 흥분해서 이제 더는 줄무늬 고양이도 친구들을 말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비와 희나는 고양이들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한참 나비와 희나의 평가를 듣던 고양이들은 만족해서 하나 둘 씩 제 자리로 돌아갔다. 

겨우 주위가 한산해지자, 줄무늬 고양이가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면서 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어휴. 정말 고생이 많았어. 아무튼 우리 발명품을 칭찬해줘서 고마워.


-아니야. 진심으로 멋있는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는걸.


“그래.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나비와 희나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둘의 대답은 진심이었다. 

솔직히 얘기를 많이 해서 목은 조금 아팠지만, 듣는 고양이들이 정말 기뻐해서 얘기하는 동안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자기 일에 열정이 있는 고양이들은 만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었다. 

희나는 잔에 담긴 우유를 마셨다. 희나는 우유를 마시면서 한 숨 돌린 다음, 줄무늬 고양이에게 아까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그나저나 너희들은 왜 여기에서 기계 벌레들을 만들고 있는 거야?”


-그야 고양이들이 진짜로 착각할만한 멋진 기계 벌레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지. 물론 기계 쥐 같은 기계 동물들도 만들고 있어. 


희나의 질문에 줄무늬 고양이가 금방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희나가 듣고 싶던 대답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내 말은. 연구소를 도시에 만드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야. 여기는 깊은 숲속이라 다른 고양이들이 오기 힘들잖아.”


희나의 말에 줄무늬 고양이가 움찔했다. 

줄무늬 고양이는 잠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한숨을 푹 쉬며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게. 아무래도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안전상의 문제?


이번엔 나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봤다. 안전상의 문제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응. 너도 오늘 봤다시피, 네 손짓 한 번에 기계 벌레가 망가졌잖아. 그러면 고양이들이 기계 부품을 삼키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 고양이들이 삼키지 못하게 기계를 일부러 크게 만들었는데, 부서져서 작게 조각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래서 튼튼한 기계 벌레를 만들 때까지 피해보는 고양이들이 없도록 숲에서 만들고 있는 거야. 오늘은 23탄을 시험 비행하고 있었던 거고.


나비와 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구나. 이제 왜 연구소가 숲속에 있는지 알겠어.”


하지만 나비는 여전히 궁금한 게 있었다. 

나비는 잠깐 커다란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면서 생각하다가, 줄무늬 고양이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왜 힘들여서 기계 벌레를 개발하는 거야? 진짜 벌레가 있잖아. 진짜 벌레는 기생충 약만 제때 먹으면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기계 벌레를 힘들여 개발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야?   

  

-아니야. 기계 벌레를 개발하는 건 커다란 의미가 있어. 


나비의 말에 줄무늬 고양이는 발끈했다.

 줄무늬 고양이는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자기의 뜻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쥐를 잡거나, 벌레들을 잡는 건 불쌍해. 물론 먹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많은 고양이들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벌레와 쥐를 잡고 있어. 만약 우리가 진짜 같은 기계 동물들을 개발한다면, 고양이들은 더는 놀이 삼아 진짜 쥐나 벌레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거야. 


줄무늬 고양이의 말에 나비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비도 그동안 많은 벌레들을 잡았다. 

오늘도 주황색 나비 한 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걸 불쌍해해야 할까? 고양이가 벌레를 잡는 건 당연한 일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줄무늬 고양이의 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불쌍한 벌레들이었다. 더 살 수 있는데, 고양이들의 장난으로 죽게 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면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없을까? 

어쩌면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외면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더는 벌레를 잡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줄무늬 고양이와 친구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비는 줄무늬 고양이와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실 아직까지도 벌레들이 불쌍하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줄무늬 고양이와 친구들의 열정이 대단해서 응원하고 싶어졌다. 


-다른 고양이들은 우리를 바보 취급해. 힘들여 개발하지 않아도 멋진 진짜 벌레들이 있는데 왜 시간을 낭비하느냐고 말이야. 우리가 개발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지. 기계 벌레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놀지 않겠다고 하는 고양이들도 있고. 하지만 우리가 계속 기계 벌레를 개발한다면, 다른 고양이들도 우리의 노력을 알아줄 거야. 


다른 고양이들의 바보 취급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줄무늬 고양이는 아주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기계 벌레가 벌써 23탄이었다. 

하지만 23탄이 나올 때까지 아직 안전한 기계 벌레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다른 고양이들의 인정도 받지 못했다. 

아무리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도 그렇게 성과 없이 오래하면 힘들지 않을까? 

희나는 연구소의 고양이들이 지치진 않았을지 걱정됐다. 

희나는 머뭇거리다가 줄무늬 고양이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23탄이 나올 때까지 힘들기만 하고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했던 거잖아. 그러면 좀 지칠 것 같아. 너희들 정말 괜찮은 거니?”


희나의 질문에 줄무늬 고양이는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줄무늬 고양이는 금방 기운을 차리고 다시금 눈을 빛냈다. 

줄무늬 고양이의 호박색 눈동자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힘들어도 좋아. 다른 고양이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아.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어. 다른 누구의 삶도 아닌, 내 삶인걸. 


줄무늬 고양이는 잠깐 말을 멈추고 연구소를 둘러보았다. 

마치 자신이 이룬 것을 둘러 보는 듯한 행동이었다. 

연구소의 친구들과, 장식장에 장식되어 있는 많은 시험작들이 줄무늬 고양이의 눈에 비춰졌다. 

줄무늬 고양이의 가슴에 행복과 뿌듯함이 가득 차올랐다. 

줄무늬 고양이는 아까보다 더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 다른 고양이들처럼 사는 건 지금 이 삶보다 덜 머리 아플지 몰라. 다른 고양이들에게 무시당할 일도 없고, 매일 기계기름 만지면서 고생할 필요도 없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충실히 즐기면서 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해야만 해.


줄무늬 고양이의 말에 나비와 희나는 왠지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을 느꼈다. 

특히 희나가 더 그랬다. 희나는 아직 꿈이 없었다. 아직 뭐가 되고 싶은지, 뭐가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언젠가 희나에게도 줄무늬 고양이처럼 하고 싶은 일이 생길까?

만약 그런다면, 희나도 자신의 꿈 앞에서 줄무늬 고양이처럼 항상 당당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 희나의 손을 갑자기 누군가가 잡았다. 줄무늬 고양이었다. 

줄무늬 고양이는 희나와 나비의 손을 모아 잡고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너희들도 항상 생각해야해. 내가 누구의 바람대로 살고 있는지. 정말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지레 포기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봐. 후회를 남겨둬선 안 돼. 자신의 삶 앞에서 항상 솔직하게 최선을 다해야만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어.


줄무늬 고양이의 말은 어쩌면 지금껏 많이 들어온 말 같았다. 항상 솔직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

 하지만 나비와 희나는 오늘 그 말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지금껏 어떤 일에서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던 적이 얼마나 될까? 

최선을 다하라는 건 쉽게는 말할 수 있어도 지키기는 어려운 말 같았다.


희나는 줄무늬 고양이의 손을 마주 꼭 잡았다. 희나는 앞으로 자기가 어떤 꿈을 꾸게 될지 몰랐다. 

하지만 만약 나중에라도 꿈이 생긴다면, 자신의 꿈을 비웃거나 깎아내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오늘을 떠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줄무늬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눈과 따뜻하고 힘 있는 손을 떠올려야지. 

그러면 꼭 줄무늬 고양이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연구소에서 너무 오래있었던 것 같았다. 

나비와 희나는 아직 밝을 때 빨리 숲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연구소 고양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막 연구소를 떠나려고 할 때, 

나비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말했다. 


-있잖아. 다음 개발품부턴 기계 벌레들이 나는 높이를 조절하면 좋을 것 같아. 기계 벌레들이 너무 높이 날면, 고양이들이 잡으려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칠 수도 있거든.


연구소의 고양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비가 말하기 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줄무늬 고양이가 연구소 고양이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고마워. 정말 좋은 생각이었어. 24탄부턴 네 의견을 참고해서 개발할게. 그리고, 내 이름은 애옹이야! 생각해보니 우리 소개도 못했잖아!


나비와 희나는 줄무늬 고양이를 빤히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우스운 일이었다. 

만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왜 이름을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아무래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 계속 이어져서 그랬던 것 같았다. 

나비와 희나도 뒤늦게 자기소개를 했어. 


-내 이름은 나비야.


“내 이름은 희나!”


-그래. 나비, 희나! 언젠가 다시 우리 연구소에 놀러와 줘. 그때 또 새로 개발한 기계 벌레를 보여줄 테니까!

애옹이가 나비와 희나를 향해 밝게 말했다. 연구소의 다른 고양이들도 손을 흔들며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장군이, 후추, 해남이, 나옹이. 서로 소개가 끝난 뒤, 나비와 희나는 다시금 손을 크게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 얘들아. 꼭 다시 놀러올게!”


-응. 다시 놀러올게. 그때까지 잘 있어야 해!  


빨간 노을 속 연구소는 참 정다워 보였다. 

나비와 희나는 숲을 떠나며 연구소의 고양이들이 멋진 발명품을 만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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