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시인선 204
시, 시집, 시인에 관심을 품게 된 이번 여름.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시간이 남아서 가벼운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자고 생각했다. 우연히 손이 가게 된 - 김이듬의 시집.
아마 이 시집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 시 한 편으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 시집에 수록된 첫 작품이자 나에게 김이듬 시인을 새겨넣은 계기.
<입국장>
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할까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파무크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 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밝은 조명 아래 내 우울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습관처럼 깊이 눈을 감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습격한다
밀려 내려가다 꼼짝없이 매몰되었던 사람들
필시 친구는 다 알고 있을텐데
이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악했을텐데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그 도시가 더이상 자동차의 도시는 아니라고 했다
파산 직전의 공장들과 슬럼가를 찍은 사잔을 보내왔었다
그녀에게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설명할까
자동차가 아닌, 사람의 도시라고
최소한 총성이 울려퍼지지는 않는다고 덧붙일까
자질구레한 것들을 치운 내 방에 그녀의 잠자리를 만들었고
베지테리언 식당도 알아봤지만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트렁크 끌고 공항철도를 타며
말해야 할까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것들이 조각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하다면
이즈음 나는 어두운 방에 나를 가둔 채 발작하지 않았겠지
신경안정제 부작용인지 부은 얼굴로 너를 마중하러 나오지는 않았겠지
네가 예민한 건 아니야
친구가 와서 나를 안아주면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