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손절을 고민한다> 공동저자 북토크 (10/16)
하, 이렇게 고민할 바에야 그냥 손절하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잘라내 버려도 되는 걸까.
...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했던, <나는 오늘도 손절을 생각한다> 북토크 with 서늘한여름밤 & 공동저자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나인...)
공동저자 중 1인이기는 하지만, 북토크에서 나의 역할은 대단치 않겠거니 생각했다. 사실 내가 심리학이나 상담, 코칭 전문가도 아니고 출판업 관계자도 아니니까. 심지어 단독저자도 아니고 1/n의 머글 참가자인데 뭐 대단히 할 게 있겠어?
But never say never.
예상보다 적극 참여하게 되었고, 기대보다도 참석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게 많았던, 그야말로 선물 같은 저녁이었다. 이렇게 말로 하고 보니까 어쩐지 클리셰 같은 표현이 되었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맞는 요약인걸 :)
2023년 하반기, 늘 즐거운 마음으로 들렀던 중림동 메디치미디어 건물. 2024년 가을 오늘은, 드디어, 저자로서 이곳을 재방문하게 되었네요. 어머 여러분 저거 봐요. 우리 북토크 소개다. 기념사진 찍어요. 와글와글.
북토크에 앞서 미리 모여서 저녁을 먹고 온, 우리 동료 작가님들. 혼자 하면 업무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들뜬 마음으로 함께 하니까 놀러 온 것 같군요. 후후.
(다들 저자 소개에 실명 공개도 되어있고, 북토크에 저자로서 공개적으로 참석도 했으니까 여기에 사진 올려도 된다고 판단해 봅니다!)
메디치미디어 지하 1층, 북토크 장소에 도착하니 이런 반가운 책들의 풍경이 맞이해 준다. 하나 같이 다 눈에 익은 책들.
우리가 이번에 함께 출간한 <나는 오늘도 손절을 생각한다>는 메디치미디어의 중림서재 3기에 해당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앞서 진행되었던 1,2기의 결과물인 책들 - <어른의 공부> <대화의 대화> <먹는 우리>
TMI.
나는 <대화의 대화> 모임에 참가 신청을 했으나 높은 경쟁률에 광탈한 적이 있다. 테마 자체로만 보면 <공부의 공부>에 가장 끌렸는데 이건 아예 너무 늦게 알았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연결되는 삶> 모임에 들어가서 <나는 오늘도 손절을 생각한다>를 출간한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훗.
중림서재란?
전문가와 애독자가 만나서, 특정 키워드에 대한 여러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그 다양한 의견들을 대담집의 형태로 출간하는 프로젝트.
전문가와 애독자가 모여 함께 공부하고, 함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그래도 역시 눈에 쏘옥 들어오는 건, '우리 책'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 아니겠니. 바운더리를 설정하고, 공감에 대해 고찰하고, 협력에 대해 고민하고, 연결을 향해 나아갔던 우리의 2023년 하반기.
연결되는 삶 - 나는 내가 먼저고, 공감과 협력을 넘어,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북토크는 자주 다녀봤지만, 저쪽(청중석)이 아니라 이쪽(저자석)에 앉을 날이 오다니. 두근두근. 역시 사는 건 재밌어.
1부 : 출간 과정에 대한 소개, 저자들에게 하는 질문.
2부 : 서밤과 함께 하는 인간관계 손절 고민 상담소.
동료 작가들 중에는 심리상담이나 코칭 등을 전공했거나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고, 심리나 인간관계에 대한 학술적 이해도 없다.
이런 내가,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타인의 고민을 듣고 조언하는 역할을 섣불리 해도 되는 걸까? 그렇게, 누군가의 삶에 감히 개입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처음 계획은 - 고민 상담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나는 책을 만드는 과정이 어땠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등 개인적인 질문들에만 얌전히 답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지!)
Q. 저자분들 중에선 이미 책을 출간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도 있고, 이번이 첫 출간인 붙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의미가 다 다를 것 같아요. 책을 만드는 과정이 어땠는지, 또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들려주세요.
A.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고 있습니다. 뭐, 제가 감히 안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요. 이 책에서 저는 여러 공동저자 중 1인, 숲 속에 숨을 수 있는 하나의 가지, '서밤과 아이들'에서 아이B 정도를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ㅎㅎㅎ) 저보다는 여기 메디치미디어 출판사의 편집자님, 그리고 여러 저자들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그래도 미루어 짐작은 해봅니다.
하지만 이번 출간 프로젝트는 저에게는 고뇌나 고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재밌는 그 무엇이었지요. 책에 관한 책이라니, 공통 주제로 책을 읽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이 내용이 전문 편집자의 손에서 책으로 엮여서 나온다니. 이렇게 좋은 것만 누려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
나의, 우리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목표에서 시작한 것이었지만 - 한동안 그 사실은 잠시 망각할 정도로 과정 자체가 즐겁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그들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왜 나인지'에 대해서 공들여서 설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참석자들이 기꺼이 토론하고 경청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모인 이들이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의심하고 눈치 보는 데에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었지요.
그렇게 책을 읽고 말을 하고 글을 쓰고 하다 보니까, 어느덧 책이라는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모임 종료로부터 책 출간까지 반년 넘게 걸렸기 때문에, 묻어뒀던 타임캡슐을 꺼내보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어, 내가 이런 소리를 했었나?' 싶은 문구들도 보이는데, 읽다 보면 '음, 내가 했을 법한 소리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마치 1.5인칭 같은 시각이랄까요. 기억이 미화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엮어내신 편집자님 덕이겠지만요 :)
30명도 안 되는 자그마한 북토크였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울 만큼 온전한 관심과 집중을 보여주었다. 다정한 시간이었지. 사전에 온라인으로 취합한 고민 상담 질문들도, 현장에서의 반응도 활발해서 초보 저자는 과분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갹)
심리학 코칭 분야에서 인지도가 있는 서밤님에게 대부분의 답변을 맡길 요량이었는데 - 현장에서 모두가 눈을 반짝이면서 적극 참여를 해주니 나도 그리고 다른 저자들도 절로 감응하게 되더라. 후훗.
오히려 나를 포함한 모든 저자들이 적극 참여를 해서 나중에 북토크 마치고는 모두가 서밤님을 놀리는 데에 동참했다. 아, 모임장님 너무 꿀 빠신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아래는 고민 상담 내용들 :
Q1. 저는 관계에 너무 힘을 많이 주는데, 다들 가벼워 보여요.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Q2. 이전에 도움을 받았던 사람의 무리한 부탁이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Q3. 절친의 범주가 너무 좁습니다. 편안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될까 걱정돼요.
Q4. 그동안 친했다고 생각한 지인이 아무 말 없이 저를 차단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연락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Q5. 학생 때는 친했지만 전공도 일하는 분야도 달라지면서 이제는 만나면 피곤하고 불편한 느낌이 드는 모임이 있어요.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좁아질까 봐 계속 나가고는 있는데 모임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피곤한 느낌이 듭니다. 이 관계는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Q6. 함께 살 정도로 친했던 동성친구와 '더 이상 관계가 이어지기 어렵겠다,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 생각이 나중에 바뀔 수도 있으니 우선 결정을 유보하고 잠시 내버려 두는 게 나을까요.
Q7. 10년 동안 손절했던 아빠와 다시 만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 회사를 그만둔 저는 엄마에게 손절당한 것 같아요.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빠를 다시 만나고 엄마의 그간 거짓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대한 태도를 생각하면 저 또한 엄마를 손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제가 왜 이걸로 마음이 안 좋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손절까지는 하지 말고 원래대로 지낼까, 생각이 너무 복잡합니다.
Q8. 친구가 사장인 가게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너무 오래 운영해서 힘들다면서 제가 주 5일 근무해 주면 다시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부탁에 일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근무한 지 1달도 안 되어서 친구의 말은 거짓말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니까 버텨봤지만 친구는 늘 잦은 지각을 했고 결국 제가 혼자 가게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사장인데 그런 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로 항상 답하곤 했습니다. 이에 저는 친구의 태도에 질려서 가게를 그만두었습니다. 사장이 친구라는 이유로 그간 작성을 미루었던 근로계약서 미작성 건으로 신고도 했습니다. 그 후로 사장은 저에게 뒤늦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이 관계를 끊어내고 제 감정을 떠내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중 몇 가지에 대한 답변 요약 :
Q1. 저는 관계에 너무 힘을 많이 주는데, 다들 가벼워 보여요. 균형을 찾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서밤) 관계가 가벼운 분들, 나는 인간관계가 깃털처럼 가볍다 하는 분들 이 자리에 계신가요? (아무도 없음) 그렇다면 나 역시 인간관계가 어렵고 힘들 때가 있다 하는 분들 (대부분 손) 여기에서 답이 어느 정도 나오지 않았을까요.
관계에는 다들 힘을 많이 줍니다. 힘을 많이 쓸 수밖에 없죠. 가볍고 무거운 것 간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나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무게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지 않을지.
(배현정) 운동하는 것과 다소 비슷하지 않을까요. 같은 운동을 수행하면서도 '저 사람은 되는데 왜 저는 안 되죠'라고 묻는 것이 의미 없듯이. 타고난 근력, 시간 등이 다르고 나는 나에게 필요한 인풋을 해야 하는 게 아닐지.
(질문자) 제가 질문한 내용이네요. 정해진 약속을 상대방이 쉽게 바꾸면 나만 진지한 것인지 허탈해질 때가 있다.
(서밤) 저도 진심인 편이라서 (ㅎㅎㅎ) 이 답변은 혜진님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김혜진) 왜 저한테 넘기셨는지는 알겠어요 (ㅎㅎㅎ) 저는 대충 살자는 주의라서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질문자님와 내가 비슷하다고 느끼신 분들 손 들어보시겠어요? (절반 정도) 그럼 다르다고 느끼신 분들? (절반 정도) 이렇게 우리는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저만 해도 서밤님과 성향이 상당히 비슷한데도 이번 질문에서 서밤님은 제가 다른 답변을 할 거라고 판단하고 저에게 넘기셨잖아요. 이렇게 성향이 비슷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 다른 입장, 다른 판단을 합니다. 애당초 다릅니다. 나의 답은 나 밖에는 모르는 거죠.
(배현정) 또 다른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첨언을 하자면 (ㅎㅎㅎ) '나는 이렇게 인간관계가 무거운데 저 사람은 나와는 다르게 가볍구나'라는 식으로 인식을 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인간관계에 이만큼의 정성과 품을 들이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건 어떨까. 나의 성향, 그런 나에게 필요한 공간을 먼저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러니까 '나'를 중심에 두면 사고방식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을지. (저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Q4. 그동안 친했다고 생각한 지인이 아무 말 없이 저를 차단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연락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정화) 이입이 되네요. 저도 경험해 본 일입니다. 우선,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서 섣불리 넘겨짚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불편하다고 해서 이렇게 말없이 차단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가 맞죠. 살다 보면 불편한 상황도 생기고 이를 상대방이 알아줬으면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타인이 이를 알아줄 의무는 없습니다. 설령 상대방의 불편함을 내가 눈치채더라도, 상대방이 말을 먼저 하기를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내가 과도하게 눈치를 보게 될 경우에는 ‘관계의 구조화’가 잘못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배현정) 한 가지 부연해 보겠습니다. 질문 본연으로 돌아가볼게요. 이미 차단을 당해서 우리 사이의 연결고리는 끊겼잖아요. 그러니까 분리를 해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차단한 상대방, 그리고 나. 상대방의 의도에 대해서 상상을 하고 추측하는 것은 의미 없으니 하지 않기를 권장하고 싶어요. 그와는 별개로 나의 감정에 대해서는 직면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서운함, 분노, 또는 실망. 하지만 이 둘 사이에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상대방이 차단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어쨌든 그와는 무관하게, 나의 감정은 충분히 상처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요.
Q7. 10년 동안 손절했던 아빠와 다시 만나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둔 저는 엄마에게 손절당한 것 같아요.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빠를 다시 만나고 엄마의 그간 거짓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대한 태도를 생각하면 저 또한 엄마를 손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제가 왜 이걸로 마음이 안 좋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손절까지는 하지 말고 원래대로 지낼까, 생각이 너무 복잡합니다.
(김혜진) 내용을 보면서 이 질문자님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습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우리가 갈망하면서도 참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죠. 게다가 건강도 안 좋다고 하셨죠.
질문자님이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질문만 보면 이 분이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여요. 이런 마음을 어머니가 알고 계실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심리학에서는 가족관계를 모빌에 비유하곤 합니다. 줄에 매달린 인형 하나를 건드리면 모빌이 순차적으로 움직이죠. 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라도 다른 행동을 취하면 이에 따른 영향과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질문자님이 선택한 현 상황이 아니라 해도 어머니와의 관계 개선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변화를 도모해 보는 건 어떨지.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 과정에서도 질문자님이든 아버지든 누군가가 다가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님이 어머니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요. 손을 먼저 내민다고 해도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설령 거절 당할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 있을 수도 있어요. 용기를 내더라도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가족관계에서 힘든 일들이 있었는데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에 거절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본 경험이 생기고 그 경험이 쌓여가면 그 과정에서 내가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되더라도 그 어떤 노력을 해보심이 어떨지 권유드립니다.
(배현정) 저도 하나 덧붙여볼게요. 질문자님의 워딩을 보면 본인도 마음이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손절하고 싶었다가, 엄마한테 화가 났다가, 내가 왜 불편해야 하나 싶어서 관계를 이어나갈까 싶고, 그 와중에 몸도 안 좋으니 더 마음이 약해지고. 물론 본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서 변화를 일으켜보는 것도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질문자님이 혼란스럽고 힘들다면 지금 당장 답을 내리지 않는 것도 선택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했듯이, 힘든 관계 속에 있을 때에는 그 관계의 박스에서 빠져나오는 게 우선이라고 말씀드렸죠.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하게 보이고 확신이 설 때까지는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나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아야 한다고요.
Q8. 친구가 사장인 가게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너무 오래 운영해서 힘들다면서 제가 주 5일 근무해 주면 다시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부탁에 일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근무한 지 1달도 안 되어서 친구의 말은 거짓말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친구니까 버텨봤지만 친구는 늘 잦은 지각을 했고 결국 제가 혼자 가게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내가 사장인데 그런 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로 항상 답하곤 했습니다. 이에 저는 친구의 태도에 질려서 가게를 그만두었습니다. 사장이 친구라는 이유로 그간 작성을 미루었던 근로계약서 미작성 건으로 신고도 했습니다. 그 후로 사장은 저에게 뒤늦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거절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이 관계를 끊어내고 제 감정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배현정) 오늘 질문 중에서 가장 긴 질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친구, 감정, 근로계약, 법적 관계까지 다 얽혀있죠. 하지만 저는 다른 그 어떤 질문보다도 그 자체에 답이 있는 걸로 보이긴 했어요.
우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장 눈에 띄었던 게 있습니다. 이 질문의 초반에는 주어가 '친구'였다가 끝으로 갈수록 '사장'으로 바뀝니다. '친구가 사장인' 가게라고 했는데 끝에는 '사장이, 사장은'이라고 이야기하죠. 이렇게 관계를 인식하는 초점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에도 몇 가지 힌트들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태도에 '질렸고' 사장은 '뒤늦게' 사과를 하려고 했고, 저는 '거절'했으며 '신고'도 했다. 본인의 마음이 가는 방향은 사실 뚜렷한 상황이죠. 물론 그게 최선의 방식인지는 시간이 지난 후에 본인도 마음의 정리를 한 후에 결론이 나겠지만요.
그래서 본인이 가고 싶은 방향은 사실 정해져 있다고 저는 판단을 합니다.
가장 끝에 말씀하신 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어떻게 이 관계를 끊어내고, 내 감정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본인이 상황을 너무 잘 파악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 처음이야. 당연히 힘들 수 있어. 그럼 나에게 필요한 건 뭘까. 이 관계가 나에게 해로워. 나는 이걸 지속하지 않기로 이미 마음먹었어. 끊어내고 싶은데 여기에 조언이 있다면 공유해 달라. 그리고 내 안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떠나보낼 수 있을까.
제가 보기에는 문제 파악 너무 잘하고 계세요, 이 분은. 내 감정을 떠내 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앞서 다른 질문에서 나온 답변 중 일부를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상대방이 나에게 한 행동과 나의 감정, 이 두 가지를 분리해서 보시라는 것.
이 질문자 분은 분리를 하실 줄 안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행동을 했고, 그것은 부당하므로, 나는 관계를 끊어낼 결심을 했고, 필요한 조치(신고 등)를 이미 취했어. 그건 그거고 나는 여전히 마음이 힘든데, 이 마음을 어찌 감당하고 보살펴야 할까.
오늘 이렇게 공유해 주신 것부터가 그 시작이 될 수 있겠지요. 감정을 보듬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 이 상황을 알고 있는 친구와의 대화, 또는 글로서 해소하는 방법 등등 다양합니다. 자기만의 건강한 방식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 질문자 분은 답을 이미 가지신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연결의 순간이 있었다.
북토크 마치고 다들 와글와글 인사하고 책에 사인도 하던 때였다. 어느 분이 다가와서 수줍게 말을 거는데,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에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알고 보니 -
마지막 질문을 한 장본인.
너무 힘들었는데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렇게 답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 세상에. 내가 한 말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았구나. 그것도 가장 필요한 때에 필요한 방식으로.
사실 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듯이 한 말이긴 해도, 저 8번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만약에 '힘들었겠다' 류의 공감을 기대한 이라면 나의 이런 단어 선택이나 어투가 냉정하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난 저 길을 가고 싶었어. 그저 감정의 위로가 아니라, 근거가 있는 쓰다듬음 말이야.
내가 나임을 포기하지 않고 가장 나답게 한 말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니. 그걸 알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그 분과는 그저 스쳐 지나가고만 싶지 않아서 현장에서 바로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했다는 후문...)
책을 읽고, 모여서 그 책을 주제로 다정하게 그러나 뚜렷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결과물인 책이 세상에 나올 때 - 모든 과정들이 다 좋았다.
그런데도 그 모든 순간들보다도 중림동의 이 가을날이 더 좋았다. 기꺼이 고민을 나눠주고 생각을 더해주고 시간을 내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에.
... 그리고 이럴 때를 위해서 인스타랑 브런치 계정을 기재한 개인 명함을 따로 만들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지;
덧.
현재 심리상담과 임상심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 2인이 서밤님 유튜브에 출연한 썰 ㅋㅋㅋ
손절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세 명의 심리학자가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