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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Nov 10. 2024

BOOK | 다섯 가지의 프랑스

90일, 크루아상, 무정형, 말들, 그리고 침묵.




문득, 알게 되었다.

올해 프랑스에 관한 책만 여러 권 읽었다는 사실을.


프랑스 작가가 쓴 문학 작품들은 제외하고. 프랑스에서 먹고 여행하고 사유하면서 지낸 에세이들만 하더라도 말이야.









프랑스에서 몸으로 90일
돈들지 않는 삶의 순례 여행

이반


처음에는 한국 남자가 프랑스에서 워킹홀리데이라도 한 이야기인가, 싶었다.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워홀은 내가 삶의 현 단계에서 탐색하고 싶은 여행의 형태도 아니고. (그리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기왕 여행이나 일상 에세이를 읽을 거라면 여성 작가의 작품이 훨씬 승률이 높은걸.)


그런데 워홀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WWOOF, 그러니까 농가에 일손을 보태는 형태의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라는 공존의 방식을 소개한다. 게다가 2030이 직장 때려치우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을 다 키운 60세에 가까운 사람이 삶의 새로운 단계를 겪어보기 위해서 떠난다.


이런 삶도 있구나, 내가 그 길을 갈 건 아니지만 그 다양성과 자율성에 마음이 흐뭇해지는 책. 서술이 유려하거나 문장이 화려한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투박한 것도 제법 잘 어울린다.







무정형의 삶
파리 산문집

김민철


김민철 작가를 향한 애정이 절반, 그리고 (비록 아주 오래 전이지만) 파리에서 거주했던 나의 어렴풋한 어린 시절 기억이 절반.


파리라는 도시를 향한 정제되지 않은 애정이 과도하리 만큼 흘러넘치는 개인 일기장 같은 책이다. 그럼에도 이미 그 도시와 이 작가에 대해서 지닌 애정 때문인지, 그런 신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나도 흐뭇해진다. 이것이 사랑인가요.


휴가 때 집어들기 참 좋은 책. 그런데 사실 김민철 작가의 저서 중에서 나의 최애는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이라는 모순적인 사실. 호호.







메르시 크루아상
장바구니에 담긴 프랑스

이지은


김민철 작가의 영업에 넘어가서 산 책. 그렇게 알게 되어서 참으로 반가운 책. 김민철 작가가 인스타그램과 프랑스 여행기에서 여러 번 언급한 '지은집밥'의 주인장, 이지은 작가의 시장 이야기다.


<메르시 크루아상>이라는 제목이 어찌 보면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는 클리셰 같아서 처음에는 심드렁했는데 책장을 펼치니 놀랍도록 풍성한 세계가 나온다. 오래된 파리의 시장, 그 시장 속의 가지각색의 식재료들, 사람들, 그들과의 인연. 본 제목보다도 '장바구니에 담긴 프랑스'라는 부제가 훨씬 마음에 든다.


반쯤 읽다가 당장 엄마에게도 한 권 주문해서 보냇다. 분명, 좋아할 거야. 프랑스에서 살았던 기억. 그 후로도 세계 여러 나라의 시장을 둘러본 경험. 그리고 먹거리가 주는 기쁨에 크게 감화되는 취향.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한줄평은 :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더라, 였다.


책 한 권으로 행복을 전할 수 있다니.







파리에서 만난 말들
프랑스어가 깨우는 생의 순간과 떨림

목수정


프랑스어의, 프랑스어만의 표현들을 하나씩 포착해서 그 안에 담긴 역사, 생각, 문화를 한조각씩 담아낸다. 프랑스에서 살았던 오래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서툴게나마 프랑스어를 약간 구사하며, 언어를 축으로 하는 담론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며, 에세이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사지 않을 수가 없는 책.


그렇지. 누군가는 장바구니에 프랑스를 담고, 누군가는 말에서 프랑스를 바라보곤 하지. 누군가는 거주를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여행을 하겠지.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2024년 싱가포르 출장길을 함께 해준, 완벽한 여행의 책.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출장/여행의 풍경이 겹쳐지면서 이 책의 기억은 아마도 오래도록 남을거야.


프랑스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프랑스에 오래 살면서 공연 예술을 접한 이의 생각조각들을 담은 에세이다. 단정한 판형, 가슬한 물성, 촘촘한 문단 편집, 무용의 손짓처럼 섬세한 문장. 미래의 어느 여행길에 다시금 집어들고 싶은 책이기도.


'내가 올해 읽은 프랑스에 관한 책들 중 하나'로 인식하고 나니까 또 새롭게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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