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딕슨은 일찍이 ‘우리 시대의 역설’이라는 시(일부 발췌)에서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 너무 적게 웃고 / 너무 빨리 운전하고 /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 생활비 버는 법은 배웠지만 / 어떻게 가치 있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은 상실했다 / 달에 갔다 왔지만 /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 졌다 / 원자는 쪼갤 수 있지만 편견을 부수지는 못 한다 / 키는 커졌지만 인품은 왜소해지고 / 이익은 더 많이 추구하지만 / 사람과의 관계는 더 나빠졌다”고, 통렬히 지적한 바 있다.
제프 딕슨의 시에 빗대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시대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어 너무 많은 단절의 두려움을 느끼고, 세상과의 접촉은 쉬워졌지만,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질병에 전염되고 너무 큰 상처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로 넘쳐 나지만, 너무 많은 정보는 타인의 행복을 너무 많이 보게 하고 우리를 타인과 너무 쉽게 비교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너무 많이 절망에 빠지고, 너무 많은 소외를 겪는다. 댓글과 좋아요, 구독자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타인의 고통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단 한명의 진지한 청자(聽者)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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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막으려는 수많은 대책과 구호가 난무한다. 그러나 생을 포기하려 한 이의 깊은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공감조차 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듯, 보잘 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삶과 죽음은 불가해한 것이다. 어스름한 미명과 노을이 아름다워서, 누군가 내민 손이 고마워서,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미안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껏 버텨온 자신이 불쌍하고 대견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비록 하찮아 보일지라도 생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은, 그저 그에게 눈길을 주고 귀 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 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출처 : 울산지방법원 2019. 12. 4. 선고 2019고합241 판결 [자살방조미수]
https://casenote.kr/%EC%9A%B8%EC%82%B0%EC%A7%80%EB%B0%A9%EB%B2%95%EC%9B%90/2019%EA%B3%A0%ED%95%A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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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덥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서점 매출이 떨어지곤 하는데, 무더위를 피하는 분들이 피서지에 읽을 책을 찾으시는지 온라인 주문이 제법 늘었습니다.
가끔 책이 모두 팔려서 "팔 책이 없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 준비한 재료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를 말하는 맛집처럼 '오늘 책 다 떨어졌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문득 앞서 적어둔 판결문이 떠올라 읽다가 '진지한 청자'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오늘도, 진지한 청자 덕분에 사람들이 외로움을 덜 느끼는 건 아닐까 하고요. 혼잣말이 되지 않도록 많이 떠들고 써주세요. 분명 '진지한 청자'가 진지하게 귀 기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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