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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스트라다 LaStrada Aug 06. 2021

여행의 종말

인간은 왜 여행을 떠날까?

[여행의 종말] 


인간의 역사는 여행으로 시작했다. 여旅 라는 한자는 깃발을 든 사람을 무리를 지어 뒤따라가는 사람들의 형상을 묘사한  갑골문 甲骨文 이 기원이다. 선사시대 인류의 여행의 목적은 무리를 지어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여행의 기원을 보여주는 갑골문.


10000년 전 지구에 나타나 먹을 것을 찾아 7000 년 동안 끊임없이 이동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방랑을 멈춘 건 대략 2,3000 년  전 청동기 시대다. 먹거리를 해결하는 방식이 수렵에서 농경으로 바뀌며 정주 定住 하기 시작했다. 


정주 농경시대가 시작되며 대부분의 인간은 태어난 곳에서 죽었다. 근대(19세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극히 일부의 직종에 종사했던 이들만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방랑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인 괴테의 전신 초상화. Goethe in the Roman Campagna. by J. H. W. Tischbein (1787)


여행이 먹고사는 것을 벗어난 것은 르네상스 이후다. 독일을 비롯한 중부 유럽의 귀족들이 교양을 위해서 유럽 문명의 시원인 지중해 변 남부 유럽의 그리스 이태리 등지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으로 유명한  '그랜드 투어'의 시대다.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생계와 상관없는 여행'을 노동자 농민에게도 대중화시킨 최초의 사람은 영국의 '토마스 쿡'이었다. 그 무렵 등장한 철도를 이용해 개신교 집회에 참석하는 일정을 만들어 진행했다. 최초의 기획여행, 단체여행, 대중 여행의 창시자였다. 


첫 기획이 성공을 거두자 토마스 쿡은 기차와 배를 잇는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세계 최초의 여행사, 영국의 토마스 쿡의 탄생 배경이다. 


영국 레스터 시티, 토마스 쿡 빌딩의 벽면 판넬에 묘사한 토마스 쿡의 기획여행.



개인 자유여행 시대를 연 것은 60년대 말 70년대 초의 히피들이었다. 요즘도 CF나 MV에 종종 등장하는 폭스바겐 Kombi Van을 타고 유럽에서 출발해 인도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남아로 들어와 호주로 가는 이른바 '히피 트레일'이라는 육로 여행 코스를 누볐다. 


히피 트레일 루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가이드 북 '론리 플래닛'의 창업자 토니 휠러도 역시 유럽부터 호주까지 히피 트레일 육로 여행을 두 번 했다. 주변 사람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답하기 위해, 식탁에서 쓰고 스테이플러로 제본한 게 론리플래닛의 시작이었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종종 들리는 80년대 빌보드 히트곡, 호주 밴드 Men at Work의 'Down Under'의 가사가 히피 트레일의 여행을 다룬 내용이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뜨겁게 달궈진 폭스바겐 콤비를 타고 히피 트레일 여행을 한다네. Traveling in a fried-out Kombi. 



론리 플래닛으로 대표되는 가이드북을 들고 다니는 개인 자유여행은 인터넷의 도입으로 괄목상대할 정도로 바뀌었고, 스마트폰의 도입 이후엔 경천동지 할 정도로 달라졌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권만 챙겨 공항으로 가면 당일에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거기다 LCC의 보급 덕분에 여행에 드는 비용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공료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졌고, 스마트폰의 여러 앱과 기능 덕분에 난이도도 쉬워졌다. 


서구의 젊은이들 사이에선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않고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출발 직전까지 팔리지 않아 헐값에 내놓는 Last minute Ticket 을 구입해 떠나는 여행이 유행이었다.  





만인의 여행 대중화 시대가 열렸고, 특히 지난 10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니즘과 관계없는 여행을 했던 여행의 시대였다. 


TV  채널을 돌리면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과 다큐가 멈추질 않았고, 홈쇼핑 채널의 가장 인기있는 상품은 여행이었다. SNS를 열면 나 빼고 혹은 나 포함 모두 여행 중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중간중간 테러와 전쟁, 전염병이라는 위기도 있었지만 여행의 열기를 식히진 못했다. 그 순간만 지나가면 금방 다시 뜨거워졌고, 그 지역만 피해 가면 얼마든지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물극필반이라고 할까.


2020년 초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COVID-19는 아이러니 하게도 여행의 전성기 때문에 전 세계로 금방 퍼졌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테러나 전염병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지금도 여행을 가려고 마음먹으면 고비용과 고위험을 감수하고 갈 수는 있으나, 코로나 이전처럼 개인이 저비용으로 안전하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즐겼던 시대는 끝났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상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다거나, 지구 70억 인구가 감염을 통해서든 백신 접종을 통해서든 면역력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여행의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여행의 종말, 대중 여행시대의 종말이다.


2010년 가을, 몽골 고비사막.


지나서 돌아보니, 인생의 전성기 20년과 인류 역사 1만 년 중 여행의 최대 전성기 20년이 겹쳤다. 그 바람에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까지, 20년 동안 한 없이 다녔다. 그 덕분에 여행으로 밥벌이도 해결했다. 


아직 못 가본 곳 가보고 싶은 곳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과거와 달리 고비용 고위험을 감수하고도 굳이 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다다르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꼭 가야 하나? 그럴 이유가 있나? 그래도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가 볼 것이다. 나는 영원한 여행자이자 여행 주의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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