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여행지 삼척에서 태어나 모두의 여행지 강릉에서 자란 사람
나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주민들이 살고 있으니 조용히 해주세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심오한, 여행지를 고향으로 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마저도 내 기준인지라 이미 삼척마저도 엄청 유명한 여행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필자는 삼척에서 태어났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름 강원도가 석탄 산업으로 호황기(?)였던 시절에 반짝 빛났던 전성기는 이미 지나고 겨우 '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삼척, 나의 고향은 삼척이다. 국내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스노클링으로 장호항이 유명해지고, 어느새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수원에 삼척을 오가는 버스 노선이 신설되는 등 사람들이 점점 삼척이라는 존재를 알기 시작했다. 가끔 나와 동생이 추억하는 일화가 있는데, 초등학생 때 수원으로 전학 온 나의 동생이 당시 반 친구들에게 자신이 '강원도 삼척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왔다고 하자 몇 아이들이 '혹시 거기서도 티비를 볼 수 있냐'며 순수하게 물어보았던 이야기이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척이 관광지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내가 태어난 곳이 삼척이라고 말했을 때 평창은 알아도 삼척은 몰랐다. 마치 내가 일산과 고양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나마 강릉의 경우 상황은 준수한 편이었다. 필자는 수원으로 이사를 온 이후에도 아직 강릉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시외버스를 자주 이용하곤 했는데 동계올림픽 개최 전에도 수원과 강릉을 오가는 시외버스는 그 어느 노선보다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다니는 시기의 9시 30분 차는 평일에도 손님이 항상 많았다. (도착하면 바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여행에 아주 적합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의 빙상 종목이 강릉에서 공동 개최되면서 KTX가 강릉까지 이어졌고, 원래도 유명했던 강릉은 여행 대호황을 맞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고향은 곳곳이 여행지로 변했다. (물론, 모든 게 여행지가 되어서 바뀐 건 아니고 종종 동계올림픽의 영향으로 바뀐 것들도 있다. 분노를 유발하는 로터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삼척의 경우 장호항이 유명세를 타고 이제 막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니 이야기를 미뤄두고, 꽤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했던 강릉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강릉에서 7년을 살면서 강남(강릉에서도 남대천을 기준으로 종종 쓰이곤 한다)에서 5년 정도, 강북에서 2년 정도를 살았다. 이렇게 말하면 어려운 듯싶은데 강남에서는 강릉에서 벚꽃 명소로 꽤 유명한 '남산'이 있는 동네에 살았으며, 강북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 동네인 '교동택지'에 살았다. 아마 강릉을 잘 알거나 여행을 꽤 다녀본 분이라면 이미 지도에 그림이 그려질 것이고, 여행을 한 번이라도 가 봤다면 시외버스터미널 정도를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행지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둥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든 건 아니다. 몇 년 전에 내가 교동택지에 살 때만 해도 공터 주차장이었던 곳에 호텔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서 들었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나마 내가 살던 곳들이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라 변화가 늦을 뿐, 서서히 여행지가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 결국 내가 좋아했던 무뚝뚝한 바닷가 사람들이 사는 냄새는 옅어지겠지?
그리고 이 생각이 심화된 것은 최근에 엄마를 모시고 강릉에 다녀온 기억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여름에 바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강릉에 살았다고는 하나 여름에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 것을 제외하면 강릉에서 여행 비슷한 것을 해본 적이 없다. 안목의 커피거리가 유명해진 것도 우리가 강릉에서 이사 온 직후였기 때문에 안목도 그저 해수욕장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남대천을 건너 강남으로 향했다. 무작정 향한 발걸음은 계획에 없었음에도 너무나 확실하게 한 곳으로 향했다. 우리는 남산으로 갔다. 남산을 넘어 노암동에 가기 위해서.
운이 좋게도 내가 잡았던 숙소가 시내 중에서도 남산에서 가까운 편인 강릉관광호텔이었다. 시내 중에 내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풍경이 가장 잘 유지된 곳이다. 그때도 노암동에서 시내로 나오는 길에 항상 택시를 타고 내리던 '택시 광장' 앞에 관광호텔이 있었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물론 우리 가족이 좋아했던 '까망만두'는 사라졌지만, '택시 광장'에도 이제는 롯데 시네마가 생길 예정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다리를 건너 자연스럽게 남산으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이 우리를 반겼는데 그마저도 반가웠다. 종종 운동삼아 동네에서 남산을 올라와서 내려다보던 '그 계단'이었다.
분명 보이는 풍경은 그대로인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나 낯설게 하며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걸까. 강릉에서 단오제를 할 때가 되면 갔던 곳이 그대로 보였다. 앞에 바로 보이는 건물에서 열린 합창 대회에 참가했었는데... 날 좋은 봄이면 학교에서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한다며 꼭 여기에 왔었는데... 그때는 분명 흙길이었던 길들이 모두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그때는 은색 철봉과 평행봉 정도가 있었는데 잘 조성된 공원처럼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가 알던 남산은 그대로인데 옷을 바꿔 입었구나.
나에게 삼척과 강릉에서 보냈던 유년시기는 유독 여유롭고, 따뜻했다. 이제 다시가서 여행객의 입장이 되어보니 세상 무뚝뚝한 사람들 같지만, 적어도 그 곳에 살 때는 참 정스러운 사람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내가 첫 인상이 유독 차가웠던 편으로 기억되는 사람으로 자란 데에도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나의 이야기는 내가 강원도에서 살았던 12년의 추억과 이후 외지인이 되어 방문한 강원도의 기억으로 가득할 예정이다.
원래는 이 글을 길게 장편으로 써서 나누어 발행할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글이 마음에 들어 이대로 글을 내고,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반갑습니다,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