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수영 Mar 02. 2023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엄마 암이래

우리 엄마 또 수술해, 이번에는 좀 심각해. 암이래.


 룸메이트에게 이 말을 전하기까지 몇 십 번을 연습했는지 모른다. 덤덤하게 룸메이트에게 말하고 난 지금도,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걸 받아들였고,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난 여전히 나약하고 어리기만 한 사람인가 보다.


 고작 한 달 전까지, 나는 다른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2년 반이나 계속된 아빠의 위기는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 큰 위기였다. 동생과 내가 종종 일을 하긴 해도 아직 우리 남매가 대학생인 이상 아빠는 우리의 학비이며 생활비까지,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계셨다. 그런데, 까닥하면 아빠가 일을 그만둬야 할 상황에 놓였으니 그 정신적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였다. 아빠를 따라다니며 함께 일을 했던 나는 특히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2년 동안 아빠는 눈에 띄게 변했다. 적어진 머리숱과 늘어난 주름, 2년 전의 사진을 보면 마치 10년은 흐른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 아빠 할아버지 되겠다, 생각하던 즈음... 거짓말처럼 모든 게 해결되고 아빠는 다시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당분간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안정을 꿈꿀 수 있게 되었고, 나 역시 편안한 복학을 상상하며 드디어 일을 줄이고 학생답게 살아도 되겠다며 안심했다.




 사실 엄마는 혹 때문에 시술을 받은 지 고작 1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시술에서 회복하고, 오랜 휴업 끝에 다시 문을 열게 된 수영장에 간 지는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우연히 다시 발견한 혹을 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가보겠다는 엄마에게 별 일 아닐 거라고, 전처럼 그냥 혹일 거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검사를 받고 왔는데, 결과가 늦어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병원에서 알려준 결과는.. 그래, 암이라고 했다. 결과가 늦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고작 마음의 준비만으로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엄마 나이 겨우 49살, 엄마는 암에 걸렸다.


날씨가 아주, 좋았다.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벌어둔 시간 한 달의 절반을 빈둥빈둥 쉬면서 보낸 내가 그 길로 방을 박차고 나와 운전면허 학원에 갔다. 나는 망설일 시간도, 여유도 없다. 심지어 돈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내가 면허를 따야 한다. 우리 집은 외벌이니까 아빠는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우리 집에 면허가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동생은 곧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러니까, 당장 대학교 4학년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내가 준비해야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다가도,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 두려워서 눈물이 흐르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정신을 차려가고 있었다. 단박에 등록한 운전면허 학원에 '나는 아무 스케줄도 없으니 가장 빠른 날짜에 교육을 잡아달라'라고 말한 뒤, 하루도 쉬지 않고 교육을 들었다. 이론 수업을 듣자마자 장내에서 차를 몰고, 장내 시험을 보자마자 집에 달려가서 가족들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돌아오자마자 필기시험을 보고, 필기시험을 보자마자 도로로 나가서 연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고작 일주일 만에 면허를 땄다. 무려 4년을 망설여온 일인데, 그 망설임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면허를 뚝딱, 따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에 면허를 따지 못한 상황도 지금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수험 생활 내내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주고 버티던 엄마는, 내가 수능을 보고 나서 앓아누웠다. 그래서 엄마 병간호를 하고, 집안일을 하느라 친구들이 면허를 딸 때 나는 병원에서 엄마 보호자를 하고 있었다.




 동생과 전화하며 흘렀던 눈물은 다 닦아버렸다. 그리곤 평소처럼 동기들과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를 때까지는 동기들에게 말하지 않을 참이다. 스스로 너무 약해질 것 같아서. 나는 악착같이 이겨낼 거다. 전보다 더 악착같이 살 거고, 더 단단해질 거다. 아무 일도 아닐 거야, 5년 뒤에 가족 다 함께 병원에 가서 완치 판정을 받고 부모님의 30주년 결혼기념일을 축하하며 행복할 그날만을 생각하면서 달려갈 거다.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가능한 거였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