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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영 Oct 10. 2021

강릉의 모래사장이 사라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모두를 놀라게 한 사천진 해안침식 기사를 보고

    아마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는 분이라면 최근 강릉 '사천진'의 해안침식이 심각하다는 기사나 영상을 본 적이 있을 거다. 필자도 부모님과 함께 저녁 뉴스를 보기도 하고, 심심할 때 이런저런 기사를 찾아보다 보니 관련된 기사를 꽤 많이 읽었다. 필자는 그저 보면서 '올해'는 사천진인가 보네...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여기가 유명한 해변들과 가깝고, 요즘 관광지로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꽤 화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삼척의 맹방 쪽도 해안침식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본 적은 있을까. 화력발전소를 새로 지으면서 예견된 결과로 심각한 해안침식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해안침식이라는 게 어제오늘 갑자기 사천진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위에서 눈여겨 읽었다면 알겠지만 '올해'라는 단어에는 이게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뉘앙스를 담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필자가 살면서 본 강릉의 바다에서는 모래사장이 깎이는 일이 생각보다 여기저기에서 많았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아주 관심 있게 살펴보고 기록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서 정확한 수치로 표현할 수는 없다. 또한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얘기는 과학적으로 보면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꾸준히 다녔던 주문진 바다가 매년 놀러 갈 때마다 계속 변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해에는 시원한 바다에 발이라도 담그려면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못 견딜 정도로 오래 걸어가야 했고, 어떤 해에는 파라솔을 치기에도 머쓱할 정도로 바다가 가까웠다. 그래서 일기와 사진들을 찾아 모래사장이 유독 짧았던 해 들을 찾아보니 주기가 대략 5년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기가 오기까지 바다는 서서히 모래사장을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여기까지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다음 얘기는 자연스럽지가 않다. 이게 정말 당연한 현상이고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바다는 가져간 만큼 모래를 돌려줬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에 봤던 그 길었던 백사장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는 그 뜨거움, 백사장이 길어서 바다에 가기도 전에 발이 뜨거워 주저앉는 그 뜨거움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동해안의 유명 해수욕장들이 돌아가면서 도로가 주저앉는 등 심각한 수준의 해안침식을 겪고 있다.


    필자는 이걸 '바다는 잘못이 없다' 이상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바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고, 인간의 욕심이 문제겠지. 충분한 모래와 모래 언덕(사구)이 있어야 바다와 모래가 자연스럽게 밀당을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욕심은 모래를 가져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바다를 최대한 가까이서 즐기기 위해 더 가까이 도로를 짓고, 건물을 세웠다. 그렇게 모래는 점점 줄어들고, 바다는 그저 가져가야 할 모래를 가져갔을 뿐인데 도로가 무너지고, 배관이 드러나고 말았을 뿐이다. 바다가 뭘 알겠는가, 그 친구는 그저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사천진 전에는 주문진이 있었다. 이 사진 속 철문이 있던 자리에는 원래 철조망이 있었다. 그 철조망은 2017년에 쓸려나가는 모래들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도로도 일부 무너져 내려서 이 공사가 마무리되기까지 약 3년여를 우회로로 다녀야 했다. 그리고 백사장은 또다시 돌아왔지만 사라진 양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이 자연 파괴로 인해 일어났음을 모두가 다 알지만, 이곳으로 자전거가 많이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자전거 도로를 다시 만들었다.

    바닷가에 놀러 가 보기만 해도 알겠지만 관광객이 좀 있다 싶은 바닷가는 모두 바다 바로 앞에 도로를 만들고, 건물을 세운다. 우리는 모두가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아는 바닷가가 모두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다. 사실 필자도 뭘 해야 하는지 알아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봄으로써 당신이 사라지는 백사장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런 마음에 내일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가게 된다면 우리가 당장 해변에 있는 건물과 도로를 없앨 수는 없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조금은 늦춰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바다에 물놀이를 하러 갈 때 백사장이 뜨거워 멈추는 경험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4년 전의 나는 강릉이 그리워서 힘들어했고, 3년 전의 나는 주문진의 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것에 마음 아파했고, 2년 전의 나는 나중에 프리랜서가 되어 강릉으로 돌아가겠다 호기로운 다짐을 했지만... 강릉이 언제까지고 내가 원하는 그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줄지 이제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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