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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람 Feb 05. 2022

감정의 도화선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안에서 찾아낸 어린 나의 기억들

  억울하리만큼 사무치는 감정을 쏟아낼 곳이 없으면 목울대에 온갖 비명을 뱉어낸다. 입은 꾹 다문 채, 가만히 삼키는 울음. 아무도 들을 수 없고, 오로지 나만이 그 비명이 울음임을 안다. 타인에게 내 감정을 보이는 일이 어리석은 짓임을 너무 일찍 깨우쳤고, 여전히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줄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 평 남짓한 원룸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오늘 하루 남은 내 감정의 잔여물을 털어낸다. 탈탈 털어버려라 아주. 더 이상 나올 짠맛도 없게 탈탈 털어버려라. 모질게 굴면 조금은 덤덤해질까 중얼거리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물먹은 솜 마냥 늘어진 몸을 힘겹게 침대에 뉘인다. 다시 눈 뜨지 않게 해 주세요-. 매일 기도하며 잠들지만 돌아오는 건 퀴퀴한 곰팡 내음과 미적지근한 햇볕. 죽고 싶지만 죽을 용기는 없어 매일 성실히 기도하지만 죽여달라는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나 보다. 로또 번호 알려달라는 기도보다 이뤄주기 더 쉬울 텐데. 당최 알 수가 없다. 

  매일이 유서와 같은 나날이라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나를 흩뿌리며 흔적을 남긴다. 타인의 삶 속 엑스트라가 되고, 지인과 별 의미 없는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집 앞 방범카메라 밑을 지나가고. 당장 내일 내가 숨이 끊어지면 모두 각자의 기억 속에서 나를 회상하며 내 유서를 집필할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애도가 담긴 추천사를 써내리며 나를 정의하겠지. 아, 얘 이랬었지- 하며. 그리고 간헐적으로 그들의 입술 위에 걸려 옴짝거리고, 껍데기만 남은 내 이름은 점점 잊히겠지. 참 허무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 멍하니 있다 보면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떠오른다. 적막을 무서워했고, 혼자가 되길 두려워했으며, 그 누구보다 어둠을 싫어했다. 어둠이 찾아오면 항상 집엔 나 혼자 남았고,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어느덧 언니와 엄마가 왔다. 초등학생이었던 난 조금이라도 혼자임이 무서워지면 언니와 엄마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고등학생이던 언니와 일하는 엄마 둘 다 전화를 바로 받을 리 만무했지만 누구라도 받으라는 심정으로 집 전화를 붙잡고 하염없이 전화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누구라도 전화를 받으면 언제 오냐 재촉하고 무섭다며 칭얼거렸다. 둘 다 조금만 기다리라며 날 다독이거나, 종종 잦은 전화에 짜증을 냈다. 당시엔 이렇게 말하면 언니와 엄마 둘 중에 한 명은 빨리 집에 오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를 내팽개치고, 가게를 뒤로하고 나에게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수 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니가 오고 엄마가 왔다. 여담이지만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난 아직도 현관 밖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파블로스의 개처럼 현관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달려가 귀를 기울였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종종 가까이 사는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오면 현관에서 한참을 울었다. 복작거리던 친구 집과 상반되는 적막감, 들어온 이 하나 없는 캄캄한 거실은 순식간에 나를 잡아먹었다. 어쩌다 하굣길에 엄마 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으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심장이 요동쳤다. '문을 열면 엄마가 있다. 문을 열면 현관에 앞선 사람의 신발이 놓여 있다.' 기대에 부응하듯 나를 반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날은 식탁에 앉아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한참을 조잘거렸다. 내 얘기를 듣는 사람이 있단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 방의 수많은 인형은 묵묵히 내 말을 잘 들어줬지만 정말 듣기만 할 뿐이었다. 종종 흡음재로 둘러싸인 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인형에게 말하는 것 말곤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할 곳이 없었기에 내겐 선택의 방도가 없었다. 이런 나에게 엄마의 대답은 무미건조한 메아리일 지라도, 무어라 대꾸가 돌아옴이 참 행복했다.

  지금도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시끄러운 예능을 켠다. 내가 움직여야만 비로소 흐르는 이 방의 시간이 너무도 부담스럽다. 초등학교에서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라 적었던 기억이 난다. 매번 혼자 웅크리고 보던 텔레비전을 다 함께 보니 그보다 행복한 순간이 있을 리가. 세상에 신은 없다 생각하면서도 가족들이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이면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이런 날만 계속되게 해 주세요.     


  "결혼하긴 싫은데 할 것 같아. 혼자 있기 싫어서"

  아무 생각 없이 엄마에게 말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비혼을 다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쉼 없이 했던 생각이었고, 결혼이란 제도가 여자에게 얼마나 불리한지 알면서도 평생 혼자 사는 것보단 낫겠다 생각했다. "그래. 능력 있으면 혼자 사는 게 더 좋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음은 뒤늦게 알았다. 외로웠던 내 어린 시절은 오롯이 나만의 일이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고,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내가 외로움에 대해 말할 때마다 엄마는 표정이 어둑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못해준 것만 생각난다며, 네 외로움도 결국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저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마음 한 편에 원인불명의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 불안함이 일찍이 죽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아빠를 향한 것인지, 외로웠던 내 유년시절에 대한 동정인지, 단순히 내 이기심으로 인한 감정인지 알 길은 없다. 뭐 이젠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안고 살아갈 뿐이다. 이제 와 안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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