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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홀로길에 Jul 08. 2023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느닷없이 속초에 왔다. 올여름이면 제주에 정착했어야 했지만, 역시나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난, 모르는 미래에 대해 상당히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즐기게 된 것이다. 칠월과 팔월 두 달 동안 동생이 자기 일을 도와 달라고 연락이 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한 번도 경제활동을 멈춘 적이 없던 난 최근 4개월의 첫 백수 생활에 막 적응하려던 참이었다. 


  “형 요즘 뭐 해?”

  “나? 글 쓰고 자전거 타고 둘레길 걷고 뭐 이러고 놀아.”

  “한가하구먼. 그럼 두 달만 알바 좀 해.”

  “뭘 해?”

  처음엔 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 잘 놀고먹고 있는데 내가 굳이? 이런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잊었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난 여기 속초에 있다. 


  동생은 속초의 한 호텔에서 객실 청소 노동자를 관리한다. 특이한 것은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그중에서도 몽골 사람이 대다수였다. 태국,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 등 흔히 보던 나라의 사람이 아니라 의아했다. 궁금해 물어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속초에 몽골 사람이 많기도 하고 칭기즈칸의 후예답게 힘쓰는 데 소질이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그랬다. 


  나의 업무는 매우 단순했다. 청소하면서 나오는 이불 홑청이나 수건 등을 층마다 수거하면 되었다. ‘뭐 딱히 생각할 것이 없는 단순노동’이라는 착각과 함께 생소한 용어에 봐도 봐도 아리송한 객실 위치. 하필 가장 바쁜 토요일에 시작해서 정신없이 보낸 첫날, 호텔 안에서 17,833보를 걸었다. 바닷바람 쐬며 용돈벌이하라더니 이 자식을 그냥….


  관리소장인 동생의 특권으로 개인 숙소가 제공되었다. 원룸 오피스텔과 비슷한 형태의 숙소는 혼자 두 달 정도 살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과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조금 낯설고 어색했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따스한 물로 씻고 나면 편안함과 동시에 묘한 공허함을 느낀다. 세월이 흐르면 계속 그럴 테니 익숙해져야 한다. 


  평소엔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내가 첫 근무를 한 다음 날 아침 7시 48분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8시 출근인데, 말 그대로 기절했던 모양이다. 정신없이 뛰어나가 지각은 면했지만, 아슬아슬했다. 올레길 35,000보를 걷고도 다음 날 거뜬하게 일어났는데 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백수 생활을 즐기며 체력이 떨어진 것을 간과했다. 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된 오늘에서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글을 쓰고 싶다는 지적 갈급함이 강하게 밀려왔지만, 눕고 싶다는 육신의 안위를 이길 수 없었다. 걸어서 1분이면 바다가 있지만 딱 한 번 먼발치에서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냥 봤다. 


  서울에서 접이식 자전거와 트레킹화도 챙겨 오고, 나름 알찬 속초 두 달 살기를 다짐했다. 일주일 전까지는 그랬다. 설악산도 오르고, 한적한 고성의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 솔밭에서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아 독서도 하고, 해가 지면 속초 구석구석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예정일 듯하다. 


  나의 속초 생활은 돌이킬 수 없이 시작되었고 처음 겪어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그들은 서로 똘똘 뭉치는 모양새다. 아무튼 얼떨결에 맞이한 나의 속초 살기는 내 삶에 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줄지 기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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